작성일: 2025년 6월 24일
감정노동에서 회복했다고 느낀 순간에도 다시 탈진은 어김없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히 일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감정을 억누르고 괜찮은 척하며 버티는 습관이 여전히 몸에 배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반복되는 감정소진의 실체가 되어버린 ‘괜찮은 척’의 일상을 정면으로 마주합니다. 동시에,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하며 스스로를 돌보는 구체적인 실천법을 소개합니다. 회복은 참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알아차리고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감정노동자는 왜 다시 지치는가 – 감정을 참는 습관의 폐해
감정노동 회복을 선언한 이후에도 다시 지치는 이유는 단지 직장 환경이나 업무 강도가 아니라, 여전히 남아 있는 내면의 감정사용 습관에 있습니다. 직장을 바꾸고 업무량을 줄였다고 해도, 감정을 억누르고 ‘괜찮은 척’ 살아가는 방식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특히 우리 사회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성숙함이며, 불편한 감정을 참는 것이 예의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상사의 부당한 지시나 고객의 무례한 말에 상처받고도, 우리는 애써 웃으며 “괜찮습니다”라는 말을 반복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순간, 우리의 감정은 무시당하고 억눌리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이 정도쯤이야’ 하며 넘기지만, 감정은 쌓이면 무게가 되고, 어느 날 갑자기 무력감과 피로로 터져 나옵니다. 이는 단순한 신체 피로가 아니라, 표현되지 못한 감정들이 응어리진 채 내면에 머문 결과입니다. 회복이란 감정을 참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다루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괜찮은 척’이 만든 감정소진의 악순환
감정노동자는 일상 속에서 ‘감정을 관리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 속에 살아갑니다. 직업적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개인의 감정을 숨기고, 통제하며, 조절해야 한다는 전제가 감정노동이라는 말에 이미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나 역시 ‘이제 회복 중이야’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일상을 버텼지만, 돌아보면 그 회복은 진심이 아닌 연기였습니다. 말투는 부드러웠고 표정은 괜찮아 보였지만, 정작 내 안의 감정은 무대 뒤에 숨어 억눌린 채 존재감을 잃고 있었습니다. 나는 회복된 사람처럼 말했고, 회복된 사람처럼 행동했지만, 사실은 회복된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을 뿐입니다. 이처럼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좋은 사람’ ‘괜찮은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강박은, 감정 회복을 더디게 만들 뿐 아니라 결국 또 다른 탈진을 초래하게 됩니다. 웃고 있지만 마음은 피곤하고, 친절한 말투 속에 짜증과 분노가 쌓여가며, 무기력은 점점 커집니다. 회복은 감정을 억누르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면을 벗고 진짜 감정을 인정하고 마주하는 용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감정노동자의 진정한 회복은 ‘괜찮은 척’이 아닌, ‘지금 나는 어떤 상태인가’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또다시 탈진의 벽 앞에 서게 될 뿐입니다.
감정을 억누르지 않는 실천 – 표현과 자각의 반복
감정 회복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극적인 변화가 아니라, 아주 일상적인 실천 속에서 차곡차곡 쌓여가는 과정입니다. 내가 가장 먼저 시도한 건 ‘감정을 표현하는 연습’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매일 아침 일어나며 스스로에게 “오늘 나는 어떤 기분이지?”, “몸은 어떤 상태일까?”라고 물어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하루가 끝난 저녁에는 “오늘 나는 어떤 순간에 기분이 나빠졌지?”, “무엇이 나를 웃게 했을까?” 같은 질문을 통해 나의 감정을 다시 꺼내어 정리했습니다. 그 감정을 메모장에 짧게 적거나, 신뢰하는 사람에게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내 안의 감정이 정리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반복은 감정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처음엔 ‘짜증 난다’는 말로만 설명했던 감정이, 시간이 지날수록 ‘무시당했다고 느꼈다’, ‘존중받지 못한 것 같았다’처럼 점점 더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그대로 인정하고 설명하는 힘을 기를 수 있었습니다. 감정은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말로 표현함으로써 해소되고 치유된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감정 회복이란 고가의 치료나 특별한 명상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매일의 생활 속에서 감정을 들여다보고, 정확히 표현하며, 나 자신에게 진실한 시간을 보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탈진을 막고 진짜 회복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입니다. ‘감정을 느끼는 연습’은 감정노동의 순환을 끊는 가장 단순하지만 강력한 도구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그 연습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감정 회복은 종착지가 아닌 과정 – 나를 지키는 선택
감정노동 회복은 어느 날 끝나는 목표가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나도 한때는 완전히 회복했다고 믿었습니다. 더 이상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고, 나를 지치게 했던 환경에서 벗어났다는 사실만으로 안심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습니다. 감정노동을 그만둔 것도 아니고,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 관계가 완벽히 바뀐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탈진은 다시 찾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만, 이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는 그 탈진의 신호를 훨씬 더 일찍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예전에는 무조건 참고 넘겼던 피로가, 지금은 나를 돌보라는 몸의 요청처럼 들립니다. 예전에는 ‘왜 또 이렇게 지쳤을까?’ 하며 나 자신을 탓했지만, 이제는 ‘그래, 지칠 수 있어. 그러니 쉬어야지’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줍니다. 감정노동자는 항상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이제는 그 타인을 배려하기 위해서라도 나 자신부터 돌보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지쳤다’고 말하는 용기, ‘오늘은 혼자 있고 싶다’고 표현하는 정직함, ‘조금 쉬어야겠다’고 선언하는 자기 배려. 이 단순하지만 강력한 실천들이야말로 진짜 회복의 시작이었습니다. 감정을 인정하는 순간, 억누르던 무게가 가벼워지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감정노동을 지속하면서도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더 이상 나를 속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는 감정 회복을 단 한 번의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수많은 선택이 축적되는 일상의 훈련이라 여깁니다. 어떤 날은 흔들릴 수 있고, 또 다른 날은 버텨낼 수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건, 그런 자신을 판단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태도입니다. 나는 여전히 탈진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회복할 줄 아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사실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괜찮은 사람입니다.
그러니 감정을 숨기지 말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시간을 스스로에게 선물해보세요. 감정노동자로서 지쳐도 괜찮습니다. 회복은 매 순간의 선택에서 시작되며, ‘괜찮은 척’ 대신 ‘지쳤다’고 말하는 그 한마디가 바로 우리를 다시 회복의 길로 이끌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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