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6년 2월 10일
최근 정부가 의과대학 정원을 향후 5년간 연평균 668명씩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하면서 사회적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습니다. “의사가 정말 부족한가”, “정원 확대가 의료 붕괴를 막을 수 있는 해법인가”라는 질문부터 “지역·필수의료가 살아날 수 있느냐”는 근본적인 문제 제기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의대 정원 확대가 왜 지금 필요한지, 그리고 정원 확대가 어떤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인지를 차분히 짚어보겠습니다.
1. 한국 의료의 구조적 위기, 숫자로 드러난 현실
한국은 겉으로 보면 의료 접근성이 뛰어난 나라입니다. 동네 병원부터 상급종합병원까지 비교적 쉽게 이용할 수 있고, 건강보험 덕분에 비용 부담도 낮은 편입니다. 그러나 이 구조는 ‘충분한 의료 인력’이 지속적으로 공급된다는 전제 위에서만 유지됩니다.
문제는 그 전제가 이미 흔들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 한국의 인구 1천 명당 의사 수는 OECD 평균보다 낮은 수준입니다.
- 고령화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의료 수요는 폭증하고 있습니다.
- 의사 한 명이 담당해야 하는 환자 수와 근무 강도는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이 지속되면 의료 시스템은 양적 포화 이전에 질적 붕괴를 먼저 맞게 됩니다. 단순히 “병원이 많다”는 사실만으로는 의료 안전을 담보할 수 없습니다.

2. 고령사회 진입, 의료 수요는 이미 폭발 단계
한국은 이미 초고령사회 문턱에 들어섰습니다. 노인 인구가 늘어날수록 의료 수요는 단순 증가가 아니라 복합·만성·장기 치료 중심으로 변합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변화를 의미합니다.
- 단기 외래 중심 → 장기 치료·관리 중심
- 단일 질환 → 다질환 동시 관리
- 수술·응급 중심 → 재활·돌봄·완화의료 확대
이러한 의료 환경에서는 의사 수가 충분하지 않으면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습니다. 특히 내과, 외과, 응급의학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등 이른바 필수의료 영역은 이미 인력 부족이 심각한 상태입니다.
의대 정원 확대는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리자”가 아니라, 앞으로 10년~20년 후 의료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최소한의 선제 조치로 이해해야 합니다.

3. 지역 의료 붕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문제
의대 정원 확대 논의의 핵심 배경 중 하나는 지역 의료의 붕괴입니다. 수도권 대형병원에는 의사가 몰리지만, 지방 중소도시와 농어촌 지역은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 분만 가능한 산부인과가 없는 지역 증가
- 응급 수술을 할 외과 의사가 없어 환자를 타 지역으로 이송
- 야간·주말 응급 진료 공백 확대
이 문제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생명과 직결되는 위험으로 이어집니다. 의대 정원 확대는 지역의사제, 지역의무복무와 같은 정책과 결합될 때 지역 의료 안전망을 복원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4. 의사 수는 ‘지금’이 아니라 ‘10년 후’를 보고 결정해야 한다
의사를 한 명 양성하는 데는 최소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 의과대학 6년
- 인턴·레지던트 4~5년
- 전문의 이후 현장 정착까지 추가 시간
즉, 오늘 의대 정원을 늘리지 않으면 10년 후의 의료 공백은 피할 수 없습니다. 현재 나타나는 의료 인력 부족은 이미 과거의 정책 결정이 만들어낸 결과이며, 지금의 결정은 미래 의료를 위한 책임 있는 선택입니다.
이번 연평균 668명 확대 역시 당장의 효과를 기대하기보다는, 중장기 의료 안전망 구축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5. 필수의료 기피 현상, 정원 동결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많은 의료 현장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문제는 필수의료 기피입니다.
- 위험도는 높고
- 노동 강도는 세며
- 법적 책임은 무겁고
- 보상은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이 구조에서 정원을 동결하거나 줄이면, 결과는 명확합니다.
필수의료 인력은 더 줄어들고, 선택진료 쏠림은 심화됩니다.
의대 정원 확대는 필수의료에 종사할 절대적인 인력 풀(pool)을 넓히는 역할을 합니다. 물론 정원 확대만으로 해결되지는 않지만, 확대 없이는 어떤 개선도 불가능합니다.

6. 이번 의대 정원 확대의 의미와 과제
정부의 이번 결정은 의료 시스템을 시장 논리가 아닌 공공 인프라로 인식했다는 신호로 볼 수 있습니다. 정책 설계와 집행을 총괄하는 보건복지부 역시 정원 확대와 함께 다음 과제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습니다.
- 필수의료 보상 체계 개선
- 지역 의료 인프라 강화
-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
- 의료사고 법적 부담 완화
즉, 의대 정원 확대는 단독 정책이 아니라 의료 구조 개편의 출발점입니다.

7. 의대 정원 확대, 의료 붕괴를 막는 최소 조건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찬반 논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하나는 이것입니다.
의사를 충분히 길러내지 않으면, 어떤 의료 개혁도 작동할 수 없다.
이번 5년간 연평균 668명 확대 결정은 완벽한 해답은 아닙니다. 하지만 의료 붕괴를 막기 위한 최소 조건이며, 늦었지만 반드시 가야 할 길입니다. 중요한 것은 숫자 자체가 아니라, 이 숫자를 어떻게 의료 현장과 국민의 안전으로 연결할 것인가입니다.
의대 정원 확대는 시작일 뿐입니다. 이제는 그 다음 단계, 의료의 질과 지속 가능성을 함께 논의해야 할 시점입니다.
원하시면 다음 단계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