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5년 7월 15일
감정노동을 하며 들었던 “참아야지”라는 말은 내 감정을 지우는 주문이었습니다. 이제는 나도 모르게 억눌렀던 감정을 하나씩 회복하며, 참는 대신 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걸어가고 있습니다.
1. 나는 언제부터 괜찮지 않은데도 웃었을까
“웃는 얼굴로 버티면 다 괜찮아지는 걸까?”
그 질문을 처음 스스로에게 던졌던 날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나는 감정노동자로 일하며 수없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참아야지.” 처음에는 그 말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들렸습니다. 나보다 더 힘든 사람도 많을 텐데, 내가 이 정도로 흔들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먼저 앞섰고, 어쩌면 ‘참는 게 어른스러운 태도’라는 믿음에 가까웠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반복되는 이 말 속에서 나는 점점 무감각해졌습니다. 내 감정을 말로 꺼내는 일이 어색해졌고, 감정을 억누르는 게 일상이 되었습니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말하고, 상처받았는데도 웃으며 넘겼습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역시 프로다”라고 했지만, 사실 나는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조차 느낄 수 없을 만큼 무뎌져 있었습니다. “참는 것”은 점점 미덕이 아니라, 내 감정을 지우는 방식이 되어갔습니다.
참는 게 익숙해질수록 나는 나에게서 멀어졌고, 내가 누구인지조차 알기 어려워졌습니다. 웃는 얼굴 뒤에 감춰진 진짜 내 마음은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았고, 나조차 외면했습니다. 이제는 그 시간이 내게 어떤 무게였는지 돌아보며,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이 왜 회복의 시작인지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2. 프로처럼 웃는 얼굴이 무너진 날
직장에서 ‘프로답다’는 말을 듣기 위해 나는 늘 침착하고 밝은 표정을 유지했습니다. 무례한 말도, 불합리한 요구도 웃으며 넘겼고, 감정을 드러내는 건 미성숙하다는 평가를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참았고, 더 밝게 웃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자꾸만 무너졌습니다. 감정을 감추는 건 기술이 아니라 억압이었습니다. 웃는 얼굴로 버텨낸 하루 끝에 나는 지쳐 쓰러졌고, 혼자 있을 때마다 눈물이 났습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감정은 마음속에 쌓이고 굳어져, 나중에는 분노인지 슬픔인지조차 알 수 없는 덩어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늘 나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어야지. 너만 힘든 거 아니야.” 그렇게 스스로를 다그치며 하루하루를 넘겼지만, 어느 날 문득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단지 프로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상처받고 싶지 않았던 거라는 걸요. 감정을 드러내면 약하다고 보일까 두려웠고, 흔들리는 나를 누구도 이해해주지 않을까 봐 외면했던 것입니다.
진짜 프로란, 감정을 없앤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걸 나는 이제서야 배웠습니다. 회복은 억압이 아니라 인정에서 시작되고, 억눌린 감정을 풀어내는 순간 비로소 내 삶이 다시 시작된다는 것을 말이지요. 나는 아직도 가끔 예전처럼 웃는 얼굴 뒤에 감정을 숨기려 할 때가 있지만, 이제는 그 순간조차 의식하고 돌아보려 노력합니다. 감정이 나약함이 아니라 사람다움이라는 사실을, 조금 늦게 알았지만 이제는 확실히 믿고 있습니다.
3. “예민하다”는 말에 다시 닫힌 마음
회복을 위해 조심스럽게 내 감정을 표현했을 때, 돌아온 말은 “너 좀 예민하네”였습니다. 그 말 한마디는 내 마음을 다시 닫게 만들었습니다. 감정을 표현했다는 이유만으로 과민하다는 평가를 받는 순간, 나는 또다시 침묵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왜 나는 늘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처럼 여겨질까, 그 질문 속에서 나 자신이 더 작아졌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무심코 던진 말이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짧은 한마디는 내 안의 복잡하고 복원 중이던 감정의 결들을 무너뜨렸고, 나는 다시 감정을 숨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아니,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차마 믿지 못했습니다. 예민하다는 것은 약점이 아니라는 것을요. 감각이 무뎌진 사람보다 더 깊이 느끼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걸, 나중에서야 깨달았습니다. 너무 많이 참고, 너무 오랫동안 침묵했기에, 작은 말 한마디에도 마음이 요동칠 수밖에 없었던 내 상태를, 그때 나는 설명할 언어도 용기도 없었습니다. 대신 스스로를 탓하며, 감정을 표현한 나를 후회했지요.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려 합니다. 누군가의 “예민하다”는 말이 내 감정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내가 느낀 감정은 내가 겪은 고통의 결과이고, 회복을 위한 신호였습니다. 이해받지 못하는 고통이 나를 침묵하게 만들었다면, 이제는 그 침묵을 깨고 다시 설명하려고 합니다. 예민하다는 말에 주눅 들기보다, 감정을 느끼는 나 자신을 지켜주고 싶습니다. 감정을 표현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지만, 이제는 그게 나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나로 돌아오는 길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4. “네가 약해서 그래”라는 말의 폭력
힘들다고 말했을 때,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건 네가 약해서 그래.” 그 순간 나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머릿속은 하얘졌고, 가슴은 묘하게 얼어붙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묻고 싶었습니다. 내가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지금의 고통이 정당하지 않은 걸까? 하지만 그 말은 내 입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대신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돌아서면서 나 자신을 탓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너무 유난을 떠는 걸까?’, ‘이 정도는 다들 버텨내는 일 아닐까?’ 그렇게 스스로를 몰아붙이면서, 나는 내가 느꼈던 감정을 무효화시켰습니다. 마치 내가 너무 예민하고,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인 사람인 것처럼요.
그 말을 한 사람은 아마 가볍게 던졌을 것입니다. 위로보다는 조언처럼, 걱정보다는 충고처럼 말했겠지요. 하지만 그 말은 칼날처럼 날카로웠고, 내 안에 있던 작은 회복의 불씨마저 꺼뜨릴 뻔했습니다. 감정노동으로 인한 지침은 어느 한 순간에,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일인데, 그걸 약하다는 이유로 치부하는 말은 회복을 더디게 만들 뿐입니다. 사람마다 고통을 견디는 방식도, 아픔을 표현하는 언어도 다릅니다. 그런데 그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모두가 같은 속도로 아파하고, 같은 방식으로 극복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오히려 폭력입니다.
이제는 압니다. 그 말이 틀렸다는 걸. 내가 약해서 힘든 게 아니라, 그만큼 오래 참아왔고, 감정을 눌러왔기 때문에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약하다는 것이 결코 잘못된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나에게 필요한 건 스스로를 책망하는 게 아니라, 나만의 속도를 존중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누군가가 다시 그렇게 말해도, 나는 내 감정을 부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그 자체가 회복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회복은, 남이 정해주는 기준이 아니라, 나 스스로 선택하고 만들어가는 여정임을 저는 배워가고 있습니다.
5. 회복을 돕는 말, “많이 힘들었겠다”
이제 나는 조금씩 감정을 말로 표현합니다. 예전처럼 참지 않고, 조용히 넘기지도 않습니다. 누군가의 말에 상처받았다고 조심스럽게 말해봅니다. 그리고 더 이상 억지로 괜찮은 척하지 않습니다. ‘내가 왜 그런 말을 듣고 상처받았는지’를 설명해보려 노력합니다. 처음에는 내 마음을 드러내는 일이 너무 낯설고 두려웠습니다. 괜히 오해를 사지는 않을까, 너무 민감하다는 평가를 받지는 않을까 걱정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어 말했을 때, 진심을 알아주는 이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 경험은 내게 큰 위로가 되었고,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같은 감정을 겪는 사람들을 만날 때, 더는 “그래도 참고 견뎌야지”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 많이 힘들었겠다. 그동안 얼마나 애썼을까.” 그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닫힌 마음을 열게 하고, 자책 속에 주저앉은 사람을 다시 일어나게 합니다. 참는 것만이 미덕인 줄 알았던 나날 속에서 우리는 너무 많은 감정을 포기하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감정을 드러내는 일은 연약함이 아니라 용기라는 걸, 나는 회복의 길 위에서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던지는 말은 생각보다 훨씬 더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하루를 살게도 하고, 반대로 무너뜨리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나는 이제 회복을 방해하는 말보다 회복을 돕는 말을 선택하고 싶습니다. 나부터 그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괜찮아”가 아닌, “정말 힘들었겠다”는 말로. 그리고 나부터 그렇게 듣고 싶었습니다. 내 감정이 사라지지 않고 존중받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말은 곧 마음이고, 그 마음이 또 다른 마음을 살릴 수 있다는 걸, 이제는 믿고 있습니다.
마무리 – 참지 않아도 괜찮다고 믿기까지
나는 이제 “참는 게 미덕”이라는 오래된 가르침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말없이 견디는 것이 성숙한 태도라 믿었습니다. 남들보다 더 아프다고 느끼는 것도, 불편한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는 것도 왠지 나약해 보일까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나는 늘 괜찮은 척하며 하루를 버텼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내 감정은 점점 무뎌졌고, 나는 내 안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회복은 나를 다시 만나는 길이었습니다. 감정을 꺼내어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이해하고, 비로소 받아들이는 것. 그건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나는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고, 억지로 밝은 척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압니다. 누군가의 말에 휘청일 때도 있습니다. 예전처럼 주저앉을 때도 있고, 무너질까 두려워 말을 삼킬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도 나는 나의 감정을 외면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존재해도 괜찮다”는 믿음을 조금씩 내 안에 심으며, 다시 나를 다독입니다. 참지 않아도 괜찮은 세상, 감정을 표현해도 괜찮은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오늘도 나를 연습하고 있습니다.
이 말이 누군가의 회복에도 작은 용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직 감정을 말하는 일이 서툰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나도 그래”라고 속삭일 수 있다면, 그 자체로 회복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 서로의 감정에 조금 더 귀 기울여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더 이상 용기가 아닌,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는 날이 오기를. 그날을 향해 나는, 그리고 우리는, 함께 나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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