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5년 6월 20일
감정노동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모든 것이 회복된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일상이 다시 무너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회복은 한 번의 결심이 아니라, 매일을 살아내는 작고 조용한 습관에서 시작된다는 것을요. 이 글은 그 작은 습관들이 제 감정의 리듬을 어떻게 되살렸는지, 다시 탈진하지 않기 위해 나를 돌보는 일상의 루틴을 어떻게 지켜왔는지에 대한 기록입니다
회복을 지속하는 힘 – 작은 습관이 바꾸는 감정 리듬
감정노동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탈진이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업무 환경은 달라졌고 억지로 감정을 숨길 일도 줄었지만,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감정이 무너지고 일상 속 피로가 다시 밀려들었습니다. 저는 회복했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여전히 소진의 그림자 안에 있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회복은 단번에 완성되는 변화가 아니라, 매일 나를 다독이며 살아내는 반복의 힘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요.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사소한 습관 하나가 저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알람 소리에 맞춰 일어나는 것, 감정을 기록하는 것, 스스로에게 잠시 숨을 쉴 틈을 허락하는 것. 이 작은 행동들이 쌓이면서 저는 감정의 리듬을 다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은 감정노동의 긴 여정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나를 지키기 위해 제가 실천한 루틴과 그로 인해 만들어진 감정 회복의 리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회복 이후에도 이어지는 탈진의 그림자
감정노동에서 벗어난 순간, 저는 이제 정말 괜찮아질 거라고 믿었습니다. 더 이상 억지로 웃을 필요도 없었고,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는 일도 사라졌으니까요. 업무량도 줄었고, 사람들과의 거리도 조금씩 조절할 수 있게 되면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느 날, 평범한 상황에서도 감정이 무너지고, 이전보다 더 쉽게 지치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회복됐다고 생각했지만, 저는 여전히 탈진의 문턱 앞에서 헤매고 있었습니다. 감정노동에서 한발 물러섰을 뿐, 그 여운은 제 일상 곳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말 한마디, 눈빛 하나, 낯선 상황 앞에서 다시 불안을 느끼고, 이유 없이 짜증이 솟구치곤 했습니다.
저는 처음엔 그저 컨디션의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반복되는 감정의 요동 앞에서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회복은 단지 환경의 변화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마음의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언제든 다시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요. ‘이제는 괜찮다’는 자기암시는 잠깐의 안도감만 줄 뿐, 내면의 금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마치 미세한 균열이 생긴 유리처럼, 작은 자극에도 제 감정은 금방 산산이 흩어졌습니다. 저는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회복은 단 한 번의 결단이 아닌, 매일 반복되어야 하는 실천의 과정이며, 그 실천 속에서만 진짜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을요. 그리고 그 실천의 중심에는 나만의 감정 리듬을 세우고 지켜가는 전략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도요.
작은 습관이 감정의 리듬을 바꾸다
처음으로 바꿔보기로 결심한 건 다름 아닌 ‘아침의 구조’였습니다. 이전의 저는 알람이 울리면 눈만 뜬 채 이불 속에서 한참을 머물렀고, 그 상태로 무기력하게 하루를 시작하곤 했습니다. 어딘가 끌려다니듯 출근하고, 감정이 깨어나기도 전에 사람들과 마주하는 일상이 반복됐습니다. 어느 날, 그런 하루의 시작부터 다시 정리해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저는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는 것을 목표로 삼았고, 침대 옆에는 물 한 컵과 얇은 노트 한 권을 두었습니다. 눈을 뜨자마자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어젯밤 내 감정을 짧게 적어보는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나를 좀 아껴야지”, “어제는 작은 말에 너무 흔들렸구나” 같은 한 줄 기록이 하루하루 쌓였습니다.
그 짧은 기록 속에서 나는 나의 감정을 처음으로 제대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또, 아침마다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향을 하나 피워놓고, 10분이라도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별한 변화가 생긴 건 아니었지만, 그 반복되는 작은 동작들이 어느새 제 감정의 리듬을 조율하고 있었습니다. 외부의 말이나 타인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나만의 속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하루의 끝에서도 이어졌습니다. 잠들기 전 스마트폰을 멀리 두고 조용한 음악을 틀거나, 마음을 가라앉히는 짧은 글을 읽으며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그렇게 시작과 끝을 정돈하는 루틴이 생기자, 저는 비로소 내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틀을 만들 수 있었고, 하루 동안 흘러든 감정의 찌꺼기들을 털어낼 수 있었습니다. 작지만 반복되는 이 루틴들은 점점 더 견고한 나를 만들어주었습니다. 감정노동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흔들리는 나를, 다시 중심으로 붙잡아주는 중요한 버팀목이 되어주었습니다.
회복은 멈춤이 아닌 리듬을 세우는 일
사람들은 흔히 회복을 인생의 큰 전환점이나, 특별한 사건으로 인식합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모든 것을 뒤바꾸는 극적인 계기가 있어야 비로소 회복이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감정노동자로 살아온 제게 회복은 그런 식으로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고, 일상 속에 숨겨진 반복의 실천에서 비롯됐습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는 것, 나를 위한 조용한 10분을 확보하는 것,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숨을 고르고 감정을 가라앉히는 그 순간들이 저에게는 무엇보다 절실한 회복의 자원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만약 그런 루틴이 없었다면 저는 이미 다시 무너졌을지도 모릅니다.
감정노동으로부터 물리적으로는 벗어났지만, 탈진의 뿌리는 여전히 내 곁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 뿌리는 타인의 시선과 말투, 세상이 요구하는 이상적인 모습, 그리고 오랜 시간 내 안에 각인된 ‘괜찮은 척’하는 습관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압니다. 회복은 그런 요소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내 감정의 리듬을 지켜내는 일이라는 것을요. 회복을 유지하려면 단단한 구조가 필요합니다. 감정을 보호하는 하루의 틀, 예측 가능한 흐름, 무너질 틈을 막아주는 작은 경계들이 제 감정을 지켜주는 울타리가 되어주었습니다. 반복되는 일상은 지루하기보다 오히려 안정적이었습니다. 변화보다 중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패턴 속에서 스스로를 다시 알아보는 과정이었고, 저는 그 일상 안에서 매일매일 나를 회복시키는 작은 힘을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쌓아가고 있었습니다.
감성을 올리는 마무리 – 감정노동자에게도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누군가에겐 아무렇지 않은 일상이, 감정노동자인 저에겐 삶을 붙잡는 마지막 끈이었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루틴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저에게는 그것이 무너지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구조이자 숨 쉴 수 있는 틀이었습니다. 회복은 한 번의 선택이나 결정으로 완성되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다시 탈진하지 않기 위해 반복하고 또 반복해야 하는 훈련입니다. 저 역시 여전히 흔들립니다. 예기치 않은 말 한마디, 감정의 미세한 파동 앞에서 움찔할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예전처럼 그대로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나를 위한 시간, 나만의 리듬, 내가 만든 감정의 구조가 그 모든 흔들림을 받아주는 완충재가 되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매일 아침 짧은 글을 적고, 하루를 조용히 마감하며 나를 들여다보는 그 시간 속에서 숨을 쉽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혹시 타인의 감정에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다면, 부디 하루에 단 10분만이라도 오롯이 자신에게 허락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커피 한 잔을 천천히 마시거나, 음악을 들으며 가만히 숨을 고르는 시간도 좋습니다. 그렇게 쌓인 시간들이 결국 당신을 지켜줄 것입니다. 감정노동자의 회복은 거창한 변화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아주 작지만 단단한 반복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지키는 법을 배워갑니다. 감정은 언제든 흐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 흐름 속에서도 내가 나를 잊지 않는 것, 그리고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품어줄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을 삶 안에 마련해두는 일입니다. 그 공간이야말로 감정노동자의 회복이 지속되는 진짜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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