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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을 지속하는 힘 – 감정노동자의 자기돌봄 전략

작성일: 2025년 6월 16일

감정노동에서 회복한 후에도 일상은 여전히 고단하고, 감정은 쉽게 소진되었습니다. 저는 그제야 회복이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깨달았습니다. 다시 탈진하지 않기 위해서는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나만의 루틴과 일관된 자기돌봄 전략이 필요했습니다. 이 글은 제가 실제로 실천해온 작은 습관들—감정일기, 숨 고르기, 거리두기, 거절 연습—을 나누며, 감정노동의 굴레를 끊어내고 스스로를 지켜내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씁니다.

1. 회복은 종착점이 아니라 ‘다시 시작’이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회복’이라는 단어를 한때는 조금 가볍게 여겼던 것 같습니다. 몇 주간의 휴가를 다녀오고, 심리 상담을 몇 차례 받으면 다시 예전처럼 일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요. 몸은 조금 쉬었고, 마음도 잠시 위로를 받았지만, 다시 현장으로 돌아간 순간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왔습니다.
끊임없이 울리는 민원 전화, 반복되는 보고서 작성, 조율되지 않는 감정의 파도. 그 모든 것이 다시 제 일상 한가운데에 있었습니다. 처음엔 다시 탈진한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왜 또 무너졌을까?” 자책도 했습니다.
하지만 문득 알게 되었습니다. 회복은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다시 무너지지 않기 위해 나를 매일 지켜나가는 과정이라는 걸요. 그때부터 저는 다짐했습니다.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겠다.” 그 마음으로 저는 스스로를 위한 회복 루틴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것부터,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실천하며 ‘다시 시작’하는 중입니다.

2. 감정노동자를 위한 실천적 자기돌봄 – 제가 만든 작은 루틴들

저의 자기돌봄은 어디에 등록해야 하는 프로그램도, 특별한 도구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작지만 지속 가능한 일상의 습관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아침 5분, ‘오늘의 감정 점검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출근 준비를 하기 전, 잠시 멈춰 내가 어떤 감정 상태에 있는지를 들여다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불안한지, 지친지, 무기력한지… 그날의 감정을 한 단어로만 적어도 제 마음은 덜 흔들렸습니다. 그 짧은 기록이 하루의 중심을 잡아주는 기둥이 되어주었습니다.

퇴근길엔 음악만 듣기. 뉴스 금지.
감정을 쏟아낸 하루의 끝에서 또 자극적인 뉴스에 휘말려 내면을 소모하지 않기 위해, 저는 퇴근길만큼은 오직 음악만 듣는 조용한 시간으로 정했습니다. 이어폰을 꽂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그 시간은, 제 감정을 다독이는 유일한 방패 같았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나를 위한 커피 약속을 정했습니다.
누구를 만나기 위한 약속도 아니고, 업무와 관련된 시간도 아닌, 온전히 나만을 위한 여유였습니다. 가까운 카페에 들러 자리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는 시간. 누군가에게는 낭비처럼 보일 수도 있는 그 시간이 제 마음에는 커다란 여백이 되어주었습니다.

이 작은 루틴들이 모여 저를 다시 탈진하지 않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감정의 회복은 고립된 치료나 일회성 조치가 아니라, 생활 속 작은 반복에서 완성된다는 걸 저는 아주 천천히, 그리고 확실히 체감하고 있습니다.

3. 자기돌봄을 방해하는 ‘의무감’과 ‘죄책감’을 내려놓기

사실 처음엔 자기돌봄이 이기적인 행동처럼 느껴졌습니다.
내가 잠시 빠지면 동료들이 더 힘들어질 거라는 생각, 민원인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하면 내가 부족한 사람처럼 보일까 두려웠습니다.
그런 책임감은 한편으로는 직업적 자부심이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은 ‘나를 소진시키는 친절’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좋은 사람, 성실한 직원, 친절한 활동가라는 말에 나를 끼워 맞추며 감정을 억누르던 시간들. 결국 그 친절은 내 감정을 희생한 대가로 유지되는 것일 뿐, 나를 지켜주는 힘이 아니었습니다.

진짜 회복은, 감정을 숨기고 참는 데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지킬 수 있는 만큼만 주고,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나누는 태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나를 전부 내어주는 일은 결국 나도, 그 사람도 상처 입히게 된다는 걸 저는 경험을 통해 배웠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저는 이렇게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돌보는 누군가를 위해서라도, 내 마음의 바닥을 미리 비워두는 여유가 필요하다고.
그걸 알게 되니, 자기돌봄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생존이었고,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반드시 감행해야 할 실천이었습니다.
의무감과 죄책감을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저는 진짜 나로 숨 쉴 수 있었습니다.

4. 감정노동에서 ‘나’를 지키는 장치, 함께 만들기

이제는 저보다 늦게 감정노동을 시작한 후배들에게 꼭 전합니다.
“힘들면 말해요. 감정은 참는 게 아니라 나누는 거예요.”
이 말을 하기까지 저도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예전엔 감정이란 걸 티 내면 안 되는 줄 알았고, 힘들다고 말하는 순간 내가 ‘프로답지 못한 사람’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나를 지켜준 건, 그 감정을 혼자 참고 견디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조심스레 말할 수 있었던 작은 순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느 순간부터 팀 회의 시간에 짧은 ‘감정 온도 체크’ 시간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의 기분을 색깔이나 한 단어로 표현해보는 거죠.
“오늘 저는 파란색이에요, 좀 무기력한 느낌이에요.”
이런 짧은 말이 오가며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감정을 숨기지 않아도 된다는 것, 불편한 하루를 혼자 삼키지 않아도 된다는 감각이 조직 안에 조금씩 스며들었습니다.

5. 회복은 매일의 선택입니다 – 감정노동자의 일상 실천

혼자서 감정노동을 견디는 시대는 이제 끝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감정노동자에게 정말 필요한 건 거창한 복지보다 일상 속 작은 공감의 언어, 그리고 서로의 회복을 위한 정서적 장치들입니다. 나를 지키는 동시에 서로를 지켜주는 문화를 함께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저는 매일 실감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의 저도 완벽하게 회복된 상태는 아닙니다. 가끔은 여전히 지치고, 때로는 다시 예전처럼 흔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제가 나를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루 10분의 감정 일기, 퇴근 후 휴대폰 무음 모드,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조용히 커피를 마시는 짧은 시간. 이 소소한 루틴이 저에게는 감정을 통과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회복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드라마틱한 변화가 아닙니다. 매일 나를 존중하는 작은 선택들이 쌓여 만들어지는 조용한 힘입니다. 그 힘이 탈진을 막고, 다시 시작하게 해줍니다.

이 글이 지금 지쳐 있는 누군가에게 작게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당신의 회복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사실, 그리고 그 회복은 이미 당신 안에서 시작되고 있다는 걸 기억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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