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5년 7월 21일
감정노동자는 언제나 괜찮은 척을 합니다. 웃는 얼굴로 하루를 버티고, 아무렇지 않은 듯 감정을 눌러둔 채 일합니다. 하지만 그 반복 속에서 쌓이는 피로와 탈진은 결국 내면을 무너뜨립니다. 저 역시 한동안은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두려워 괜찮은 척만 했고, 그렇게 쌓인 침묵은 나를 지치게 했습니다. 이 글은 그 괜찮은 척이 어떻게 내 감정을 마비시켰는지, 그리고 무너짐을 말하는 순간부터 회복이 시작되었던 저의 경험을 담은 기록입니다
1. 미소 뒤에 감춰진 탈진 – 감정을 억누르는 일상의 패턴
“요즘 어때요?”라는 질문에 나는 자동 반사처럼 “괜찮아요.”라고 답합니다. 사실 별로 괜찮지 않아도 말입니다. 감정노동을 하면서 나는 ‘내가 웃고 있어야 상대도 편하다’는 생각을 철석같이 믿었고, 그 믿음은 어느새 나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미소가 내 진짜 감정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몸은 움직이는데 마음은 따라오지 않았고, 업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문을 닫는 순간, 마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된 듯한 공허함이 밀려들었습니다. 가장 고된 건, 누구에게도 이런 마음을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누군가 내게 “힘들진 않냐”고 물어도, 괜히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더 세게 웃으며 넘겼습니다. 그렇게 나는 매일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점점 나를 속이는 데 익숙해졌고, 그 익숙함은 어느 순간 스스로를 지우는 습관이 되어버렸습니다. 내가 누구인지조차 잊혀가는 하루들이 이어졌고, 나중에는 미소를 지을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나는 진짜로 괜찮지 않았다는 것을,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회복은 불가능하다는 것도.
2. 괜찮다는 말의 무게 – 감정노동자가 스스로를 지우는 방식
나는 감정을 잘 다룬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일터에서 감정을 조절하고, 고객이나 동료에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지 않으며, 늘 일정한 표정을 유지하는 것. 그게 전문성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모든 과정은 감정을 억누르는 기술이 아니라 감정을 감추는 훈련에 가까웠습니다. 나는 매일 내 감정을 잠그고, 그 위에 밝은 표정을 덧칠했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꾸며진 ‘괜찮은 나’가 점점 나의 전부가 되어버린다는 점이었습니다. 괜찮다는 말이 진심이 아니라 습관이 되었고, 나조차 내 상태를 점검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는 탈진이었습니다.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눌릴 뿐이라는 걸, 언젠가는 밀려나온다는 걸 저는 몸으로 겪고서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괜찮은 척이 능력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제로는 감정의 표류를 방치하는 길이었습니다. 그 길 끝에서 나는 완전히 지쳐 있었고, 더는 괜찮다는 말을 믿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3. 무너짐을 말하는 순간 – 회복은 말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결국 어느 날 밤, 나는 더는 견딜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유도 명확하지 않은 눈물이 쏟아졌고, 혼자서 이 감정을 감당하는 데 한계를 느꼈습니다. 그날 밤, 가장 믿을 수 있는 동료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나 요즘 너무 힘들어.” 잠시 뒤 돌아온 답장은 이랬습니다. “사실 나도 그래. 네가 말해줘서 다행이야.” 그 말에 나는 마음의 방 하나가 열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동안 무너짐을 말하면 약해 보일까, 무책임하게 느껴질까 걱정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서로를 이해하게 해주는 연결 고리가 되었습니다. 무너짐을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나를 진짜로 살게 해주는 출발점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나는 감정을 조금씩 말하기 시작했고, 그것만으로도 하루가 덜 버거워졌습니다. 회복은 반드시 거창하거나 구조적이지 않아도 됩니다. 때로는 “나 지금 좀 힘들어”라는 그 한마디에서 회복이 시작됩니다.
4. 감정을 인정할 때 비로소 회복이 시작된다
감정을 인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감정노동자는 그 감정을 통제하는 데 익숙하고, 직업적으로도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마치 미숙한 행동처럼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야 깨닫습니다. 감정을 억누르는 일에만 익숙한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과 멀어지고 맙니다. 감정을 인정하는 일은 자신을 약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돌보는 출발점입니다. 제가 감정을 말하기 시작한 후로, 내 몸과 마음이 조금씩 반응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엔 몰랐던 긴장과 피로를 자각하게 되었고,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도 배우게 되었습니다. 감정을 들여다보는 시간은 불편하지만, 회복을 위한 유일한 통로였습니다. 저는 더 이상 ‘괜찮은 척’이라는 가면 뒤에 숨지 않으려 합니다. 진짜 나로 살아가는 것이 비록 느리고 어설프더라도, 그 길에서만 비로소 회복이 일어난다는 걸 이제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5. 괜찮지 않아도 말할 수 있는 용기
요즘 나는 내 감정을 좀 더 자주 들여다보려고 노력합니다. 감정이 올라오면 외면하지 않고 바라보고, 때로는 조용히 기록하거나 누군가에게 말합니다. “오늘은 좀 지쳤어.” 이 짧은 문장이 나를 지켜줍니다. 이전 같았으면 꾹 참고 지나쳤을 그 말이, 이제는 내 일상의 루틴이 되었습니다. 감정노동자는 감정의 소비와 관리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감정을 ‘관리’하는 게 아니라 ‘살핀다’는 태도로 전환했습니다. 감정이 무너질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지금 나, 정말 괜찮은가?” 이 질문을 외면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삶은 조금씩 달라집니다. 무너짐을 말할 수 있는 용기. 그건 단순히 감정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나를 잃지 않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회복의 시작입니다. 이제 나는, 그 회복의 문을 열어가는 중입니다. 하루하루, 내 감정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살아갈 수 있는 법을 배워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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