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5년 8월 9일
1. 경계선을 세우는 일은 왜 이렇게 어려운가
다시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다짐했던 것 중 하나가 ‘이번에는 경계선을 지키자’였습니다. 예전처럼 무리하게 모든 부탁을 들어주거나, 무례한 말에 억지 웃음을 짓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쉽지 않았습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거절의 말을 꺼내는 건 여전히 어려웠고, 상사의 기대나 팀 분위기를 의식하다 보면 경계선은 서서히 무너졌습니다. 경계선을 지키는 것은 단순히 ‘싫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과의 관계 속에서 내 마음의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안전거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러다 나만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까?’라는 불안이 끊임없이 따라다녔습니다.
2. 거절의 두려움과 죄책감 사이
경계선을 세우는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거절 이후의 마음이었습니다. 거절을 한 후에는 상대방의 반응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괜히 기분 상하게 한 건 아닐까?’, ‘다음에 나를 도와주지 않으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이어졌습니다. 이 두려움은 곧 죄책감으로 변했고, 그 죄책감은 다시 저를 무너뜨렸습니다. 감정노동이 무서운 이유는 단순히 ‘일’이 힘든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오가는 감정의 파동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파동 속에서 휩쓸리지 않기 위해, 거절 후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내가 무례하지 않게 이유를 설명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3. 경계선을 허물게 만드는 작은 틈
처음엔 단호하게 지켰던 경계선도 시간이 지나면 작은 틈이 생겼습니다. 예를 들어, ‘이번 한 번만’이라는 마음으로 예외를 허용한 일이 반복되면, 어느새 그게 당연한 일이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그 작은 틈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나중에서야 깨달았습니다. 경계선은 한 번 허물기 시작하면 다시 세우기가 어렵습니다. 상대방은 이미 그 선을 넘어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경계선을 지키는 건 단발성 결심이 아니라, 지속적인 자기 점검과 반복적인 연습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왜 이 경계선을 세웠는지’ 그 이유를 스스로 잊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4. 나를 지키는 말과 행동들
저는 이제 무례한 말이나 부당한 부탁에 대응하는 나름의 ‘문장’을 준비해 두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죄송하지만 지금은 제 일이 우선이라 어렵겠습니다”라는 짧지만 단호한 문장입니다. 이 말을 반복해서 사용하다 보니, 더 이상 거절이 큰 용기를 요구하는 일이 아니게 됐습니다. 그리고 말뿐 아니라 행동에서도 경계선을 표현하려고 합니다. 불필요한 사적인 대화를 줄이고, 업무와 사생활을 분리하는 작은 습관들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습관들이 쌓이자, 제 감정이 불필요하게 소모되는 일도 줄어들었습니다. 감정노동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으려면, 말과 행동 모두에서 경계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5. 경계선을 지키며 배운 것들
경계선을 지키는 과정에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은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전의 저는 인정받기 위해, 관계를 원만히 유지하기 위해 제 감정을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온 대가가 번아웃이었고, 자존감의 추락이었습니다. 경계선을 세운다고 해서 관계가 반드시 나빠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상대방은 저를 더 명확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제 자신에 대한 존중도 커졌습니다. 그리고 이 변화는 업무 만족도와 직장 생활 전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6. 앞으로도 계속 지켜야 할 나만의 선
이제 저는 경계선이 무너지는 순간이 얼마나 빠른지, 그리고 그걸 회복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압니다. 그래서 경계선을 지키는 일은 앞으로도 제 직장 생활의 최우선 과제가 될 것입니다. 감정노동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나를 지키는 법을 배운다면,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힘도 함께 커집니다. 저는 더 이상 모든 부탁을 들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필요한 순간에는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자신만의 경계선을 지키는 연습을 지금부터 시작하길 바랍니다. 그것이 감정노동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오래 버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