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5년 6월 24일
“이제 정말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왜 또 이렇게 지칠까?” 감정노동의 회복이 끝났다고 믿은 순간에도 탈진은 다시 찾아옵니다. 저 역시 회복 이후에도 반복되는 피로와 감정 소진을 겪으며 당황했던 적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 경험 속에서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회복은 하나의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계속해서 점검하고 조율해야 하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이 글은 감정 회복 이후에도 반복되는 탈진의 원인을 살펴보고, 그 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한 내면의 실천과 인식의 전환, 그리고 다시 나를 회복하는 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기록입니다.
1. 감정 회복, 왜 다시 탈진으로 이어지는가
감정노동으로부터 한걸음 물러선 듯한 순간이 분명 있었습니다. 나는 새로운 곳으로 이직했고, 이전보다 훨씬 유연한 조직 문화 속에서 일하게 되었으며, 내 삶의 리듬에도 여유를 주려 노력했습니다. 겉보기엔 모든 게 나아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어느 날 다시 숨이 막히고, 마음이 점점 메말라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분명히 일은 줄었고, 업무 강도도 완화되었는데도, 탈진은 여전했고 오히려 더 깊어진 것 같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나는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회복은 단순히 환경이 좋아졌다고 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요. 내가 회복했다고 느꼈던 건, 사실 외부 조건이 개선되었기 때문이지, 내 감정 사용의 패턴이 바뀐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나는 참는 데 익숙했고,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었으며,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일에는 여전히 거리감이 있었습니다. 결국 회복은 환경이 아닌, 내 안에서 다시 시작되어야 했습니다.
2. 감정을 ‘관리’하다 다시 지치는 이유
‘감정 관리’라는 단어는 감정노동자의 일상에서 너무도 익숙한 표현입니다. 나 역시 그 말에 충실하게 살아왔습니다. 화가 나도, 속상해도, 피곤해도 내색하지 않고, 감정을 ‘관리’해야만 했습니다. 고객 앞에서는 언제나 친절한 얼굴을 유지했고, 동료들 앞에서는 흔들리지 않는 모습으로 버텼습니다. 심지어 회복 중임에도 ‘나는 이제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이미지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휘둘렸습니다. 마치 그것이 내 전문성이고 생존법인 양, 감정을 숨기고 단속하는 데 익숙해졌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다시 탈진이었습니다. 나는 감정을 진짜로 관리한 것이 아니라, 억누르고 포장해온 것뿐이었습니다. 슬퍼도 웃는 척, 지쳐도 괜찮은 척, 괜찮지 않은 날에도 ‘극복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자신을 연기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속이며 살아가다 보니, 점점 내 감정의 결이 무뎌지고, 어느 순간 진짜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조차 두려워졌습니다.
특히 이번 탈진은 이전보다 훨씬 깊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번엔 단순히 힘든 상황 때문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각했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회복’을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여전히 그 회복이 무엇인지 모른 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죠.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일이 된 순간부터, 진짜 나로 살아가는 길은 점점 더 멀어졌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감정을 관리하는 것이 회복의 길이 아님을 압니다. 진짜 회복은,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감정에 솔직하게 반응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3. 반복의 고리를 끊는 감정 회복 실천법
나는 결국 감정노동을 완전히 그만둘 수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습니다.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일하는 한, 감정은 계속해서 내 일의 일부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그 감정에 얼마나 솔직할 수 있는지는 선택의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 감정 앞에 먼저 진실해지기로 했습니다. 피곤하면 쉰다고 말했고, 상처받았다고 솔직히 털어놓았습니다. 감정은 통제하거나 억눌러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존재를 허용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조금씩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작은 변화들이 시작됐습니다. 나는 매일 감정을 정리하는 연습을 했습니다. 하루에 단 몇 분이라도 나에게 물었습니다. “오늘 하루 중 가장 불편했던 순간은 언제였지?”, “지금 나는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지?” 처음엔 어색했고, 그런 질문을 하는 나 자신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 과정이 내 감정을 복원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으로 이어졌습니다. 마치 잊고 있던 나의 언어를 되찾는 듯한 감각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예전에는 부정적 감정을 느끼는 나 자신을 자책하고, 왜 이런 감정을 느껴야 하냐며 억눌렀다면, 이제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화가 나면 그것도 감정이고, 불안하거나 위축되는 것도 지금 내 상태를 알려주는 중요한 신호임을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감정을 적으로 여기지 않고, 내 안의 메신저로 받아들이자, 탈진의 순환도 서서히 약해졌습니다.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회복의 시작이라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4. 회복은 목적이 아닌 방향입니다
이제는 회복을 ‘완성해야 할 상태’로 보지 않습니다. 회복은 어느 날 도달하는 목적지가 아니라, 끊임없이 방향을 조정하며 나아가는 여정이라는 것을 몸으로 배웠습니다. 감정 회복의 길은 결코 일직선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날은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했다가도, 예상치 못한 말 한마디에 무너지고, 다시금 스스로를 다잡아야 했습니다. 그런 반복의 사이클 속에서 중요한 건, 나를 포기하지 않는 태도였습니다. 회복은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무너졌을 때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깨달았습니다.
과거의 나는 회복이란 단어에 ‘완결’의 의미를 부여했었습니다. 충분히 회복된 사람이어야, 흔들리지 않고 웃을 수 있어야, 괜찮은 사람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압니다. 흔들리는 순간에도 내 감정을 인식하고, 그 감정을 하나하나 정리하며, 다시 중심을 잡는 사람이 되는 것이 진짜 회복이라는 것을요. 감정노동자는 감정을 소비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더 자주 내 감정을 돌아보고, 더 자주 쉬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신의 회복 속도를 스스로 인정해주는 일입니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오늘의 나를 어제보다 조금 더 이해하고 보듬는 것. 때로는 멈추고, 돌아가더라도 그것이 내가 걸어가는 회복의 길임을 믿는 것. 그렇게 나만의 속도로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회복의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이 길의 끝은 알 수 없지만, 그 길 위에서 나 자신을 지켜가는 힘은 분명히 더 단단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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