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5년 6월 17일
회복은 끝이 아니라 과정입니다. 감정노동자의 삶은 매일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는 항해와도 같아서, 단지 하루 이틀 쉬었다고 해서 다시 단단해지긴 어렵습니다. 잠깐의 쉼은 잠시 숨을 고르게 해줄 뿐, 그 다음 날 다시 찾아오는 감정의 착취와 긴장 앞에서는 너무 쉽게 탈진하게 됩니다. 저 역시 회복을 ‘한 번 완성하면 끝나는 일’이라고 믿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감정노동자에게 진짜 필요한 회복은 일상에서 반복 가능한 루틴, 즉 지속 가능한 자기돌봄이라는 것을요. 그래서 저는 감정을 수시로 돌보고, 지치지 않기 위해 꾸준히 실천할 수 있는 회복의 방식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이 글은 그런 제 회복의 흐름을 나누는 이야기입니다
1. 회복은 끝이 아닌 반복되는 시작이었다
감정노동자의 회복은 처음에는 한 번만 해내면 되는 일인 줄 알았습니다. 며칠 휴가를 보내고,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잠시 사람들과 거리를 두며 쉬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 며칠이 지나면 다시 건강하게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죠. 그런데 다시 현장에 서면 상황은 달랐습니다. 익숙한 말투, 감정 억제, 억지 미소. 그 모든 것들이 너무도 빠르게 다시 반복되었고, 회복했다고 믿었던 마음은 금세 또 탈진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때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회복은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는 것을요.
감정노동자의 일은 감정을 끊임없이 주고받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감정을 쓰는 만큼, 감정을 회복하고 다루는 능력도 매일매일 새롭게 관리되어야 했습니다. 감정노동은 단지 친절하게 반응하는 기술이 아니라, 감정을 소모하지 않고 살아남는 전략이 필요한 직업이라는 사실을 체감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지속 가능한 감정 회복’이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자주 되뇌었습니다.
그 출발점은 거창한 변화가 아니었습니다. 일상 속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마음을 돌아보는 일, 하루의 끝에 “오늘 나는 어땠지?”라고 물어보는 일처럼 아주 사소한 루틴에서 시작됐습니다. 그 작은 실천이 반복되며, 감정의 리듬을 되찾고 무너지지 않을 힘을 기르게 되었습니다. 회복은 어느 날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다시 시작하는 선택이라는 사실을 저는 이제서야 진심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2. 자기돌봄은 대단한 게 아니다 – ‘나를 매일 조금 덜 버리는 일’
처음 ‘자기돌봄’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솔직히 당황스러웠습니다. 그 단어는 어딘가 멀게 느껴졌고, 무언가 여유 있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처럼 보였습니다.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티며 일하는 제게는 자기돌봄이라는 말조차 사치처럼 들렸습니다. 하지만 점점 번아웃이 심해지자, 저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결국 무너지는 건 일 때문이 아니라, 나를 돌보지 않은 시간들이 쌓인 결과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실천했던 자기돌봄은 거창한 변화가 아니었습니다. 매일 아침 출근 전 5분, 거울 앞에 서서 제게 해주고 싶은 말을 손바닥에 적어보는 것. “나는 충분히 애쓰고 있어”, “오늘은 거절해도 괜찮아”, “나부터 챙겨도 돼.” 이 짧은 문장들이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정신의 안전띠가 되어주었습니다. 단지 한 문장으로도 내 편이 생긴 듯한 위안이 찾아왔습니다.
퇴근 후에는 집에 돌아와 하루 중 가장 버거웠던 순간을 하나 떠올립니다. 그리고 그때 내가 어떤 감정을 삼켰는지, 왜 그 감정을 표현하지 못했는지를 조용히 되짚어봅니다. 처음엔 그 질문조차 어색했지만,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 감정의 패턴이 보이고, 나 자신을 좀 더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기돌봄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특별한 루틴이 아니라, 나를 매일 조금 덜 버리는 작은 실천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바쁘고 피곤한 일상 속에서도 ‘나를 지키는 문장 하나, 감정 돌아보기 한 번’만으로도 우리는 조금씩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저는 지금도 매일 체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3. 지속 가능한 회복을 위한 조건 – ‘루틴과 연결’
자기돌봄을 결심하고도 여러 번 무너졌던 적이 있습니다. 하루 이틀은 잘하다가도 바쁜 일정이나 예상치 못한 스트레스 앞에서는 그대로 무너지곤 했죠. 그러다 어느 순간, 회복은 단순한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즉, 회복이 내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연결되려면 루틴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두 가지 전략을 세웠습니다. 첫째, 자기돌봄은 혼자 하지 않는다는 원칙입니다. 감정노동을 온전히 이해해줄 수 있는 동료나 친구 한 명을 정해 매일 짧은 메시지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어땠어?”, “오늘 나 좀 힘들었어.” 단 한 줄의 교류만으로도 감정은 고립되지 않고 연결되었습니다. 자기돌봄은 관계를 통해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한 순간이었습니다.
둘째는 루틴이 무너졌을 때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복귀 지점’을 만들어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매주 일요일 밤, 10분간 ‘감정 일기 정리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일주일간 가장 힘들었던 순간, 가장 감사했던 순간을 짧게 정리하면서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어느 주는 피곤해서 건너뛴 적도 있었지만, 다음 주에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리듬이 있었기에 루틴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회복은 결심보다 복귀를 가능케 하는 구조에 달려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회복의 지속 가능성은 작은 습관이 반복될 수 있는 환경과 연결되어 있을 때 비로소 힘을 발휘합니다.
4. 감정 회복의 방해 요인 –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감’
자기돌봄을 시작하면서 제가 가장 먼저 부딪힌 벽은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었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감정일기를 써야 하고, 명상도 꼬박꼬박 해야 하며, 실수 없이 나를 돌봐야 회복이 되는 거라고 믿었죠. 하지만 그 생각이 저를 더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자기돌봄은 완벽하게 실천해야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무너졌을 때 다시 돌아오는 용기에서 힘을 얻는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하루를 놓쳤다고 자책하고, 일기를 빠뜨렸다고 실패했다고 느끼는 그 순간들이 오히려 회복을 방해했습니다. 감정노동자는 원래 자기 기대에 엄격합니다. 고객 앞에서 한 치의 흐트러짐도 허락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늘 긴장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다 보니 회복조차도 완벽해야 한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이렇게 말해줍니다. “빠뜨려도 괜찮아, 돌아오기만 하면 돼.”
그때부터 자기돌봄은 조금씩 가벼워졌습니다. 실패를 용인할 수 있을 때, 회복은 나에게 다가왔습니다. 감정 회복은 꾸준함보다 ‘되돌아올 수 있는 여백’을 지니는 것이 먼저라는 걸, 저는 그때부터 비로소 배워가기 시작했습니다.
5. 감정의 주인으로 사는 연습 – 감정노동자의 회복 선언
감정노동을 오래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감정이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웃고는 있지만 마음은 울고 있고,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는 있지만 내 감정은 점점 무감각해져 갑니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면, 결국 ‘나는 어떤 감정을 느끼는 사람인지’조차 희미해집니다. 그래서 저는 스스로에게 선언하듯 다짐했습니다. “이제는 내 감정의 주인으로 살아보자.”
그 다짐은 거창한 계획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소한 질문 하나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나는 지금 어떤 기분이지?”, “내가 이 말을 듣고 어떤 감정을 느꼈지?” 그렇게 매일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스스로에게 묻는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어색했고, 감정보다 생각이 먼저 튀어나오곤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저는 제 감정을 좀 더 정확히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정의 주인으로 산다는 건 언제나 당당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흔들려도 괜찮다는 것을 알고, 내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마주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일입니다. 누구의 기분을 대신 책임지지도 않고, 내 감정을 타인의 눈치에 맡기지도 않는 삶. 그것이 제가 감정노동자로서 회복의 길 위에서 선택한 새로운 삶의 방식입니다. 이제 저는 다시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고,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이 존중받아야 할 이유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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