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 이후에도 반복되는 탈진 – 지친 나를 다시 일으키는 연습

작성일: 2025년 6월 27일

회복했다고 믿었던 순간에도 탈진은 다시 찾아옵니다. 감정노동에서 한발 물러섰다고 느낀 그때, 예상치 못한 피로와 무기력함이 다시금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실망했고, ‘왜 또 이런 감정이 드는 걸까’ 자책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반복 속에서 저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회복은 한 번의 도달점이 아니라, 반복되는 감정의 파도 속에서 나를 돌보는 연습이라는 것을요. 이번 글에서는 감정 회복 이후에도 다시 지치고 무너졌던 순간, 그 속에서 제가 어떻게 다시 나를 일으켜 세웠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실천이 실제로 도움이 되었는지를 진솔하게 나눠보고자 합니다.

회복 후에도 탈진이 오는 이유

감정노동의 회복은 끝이 아닌 지속적인 과정이라는 사실을 저는 몸으로 배웠습니다. 1차 회복 이후 어느 날, 익숙한 무기력함이 다시 스며들었습니다. “또 시작인가…” 하는 낯익은 불안이 몰려왔고, 그동안 괜찮은 척 유지해오던 일상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회복 이후의 탈진은 이전보다 훨씬 당혹스럽고 실망스러웠습니다. 나는 충분히 노력했는데 왜 다시 이런 상태가 되었을까, 스스로를 책망하게 되었고, 심지어 회복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이었던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그 감정은 회복이 실패했다는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내가 감정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민감해졌다는 신호였습니다. 예전에는 탈진 상태조차 알아채지 못했던 제가, 이제는 내면의 변화를 자각하고 있었던 겁니다.

탈진은 단순히 피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감정을 억누르고, 괜찮은 척 반복하며 쌓인 정서적 피로가 한계에 이르렀을 때 나타나는 경고 신호입니다. 특히 감정노동자는 업무 특성상 타인의 기분을 먼저 고려해야 하기에, 자신의 감정을 뒤로 미루는 일이 습관처럼 몸에 배어 있습니다. 이 억눌림은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의 깊은 곳에 쌓이게 되고, 어느 순간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의 무게로 되돌아옵니다. 저는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탈진이 나의 나약함 때문이 아니라, 그만큼 애써왔다는 증거이며, 그 신호를 알아채고 돌보는 연습이 진짜 회복의 길이라는 것을요. 그렇게 저는 감정의 흐름을 외면하지 않고, 다시 한 번 제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로 결심했습니다.

감정을 드러내는 용기, 그 시작

탈진이 다시 찾아올 때, 저는 우선 그 감정을 감추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이전에는 “이 정도쯤이야” 하며 넘기곤 했지만, 이제는 그 억누름이 결국 탈진으로 이어졌다는 걸 알기에, 솔직해지기로 했습니다. 가까운 동료나 친구에게 “요즘 좀 지쳤어”라고 털어놓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말하는 게 어색했고, 누가 이상하게 보지는 않을까 걱정도 됐습니다. 하지만 그 한마디로 저는 제 감정을 인정했고,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묵직하게 버티고 있던 무언가가 조금씩 풀려나기 시작했습니다. 회복은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약해진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서 비로소 시작된다는 것을 체감했습니다. 감정을 억누르는 일은 일시적인 생존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오래도록 지속되면 내 마음을 갉아먹습니다.

특히 ‘표현’은 제 감정 회복의 핵심 도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누군가에게 쉽게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기장에 혼자만의 언어로 감정을 적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말로 꺼내지 못한 감정을 글로 풀어내는 것만으로도 내면의 혼란이 조금씩 정리되기 시작했습니다. 글 속에서 나는 나를 만났고, 억눌려있던 감정이 조심스럽게 떠올랐습니다. 타인에게 이해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나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었습니다. 감정을 표현한다는 건 단지 해소가 아니라, 나와 나 자신 사이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감정이 밀려올 때면 ‘숨기지 말고 말해보자’, 혹은 ‘적어보자’고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그 작은 실천 하나가 다시 탈진으로 무너지는 것을 막아주는 가장 현실적인 회복법이 되었습니다.

지친 나를 살리는 일상의 루틴들

또한 저는 하루에 단 10분이라도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려는 작은 루틴을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바쁜 일상 속에서 그 10분조차 어렵게 느껴졌지만, 꾸준히 실천하면서 그 시간이 제 감정 회복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명상, 산책, 글쓰기처럼 단순한 행위였지만, 반복될수록 마음의 근력을 서서히 회복시켜주었습니다. 특히 글쓰기는 내면에 쌓인 감정을 밖으로 꺼내 정리하게 도와주었고,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연결해주는 중요한 다리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처음엔 ‘이게 무슨 도움이 될까?’ 싶었지만, 글을 쓰며 내 마음을 바라보고 표현하는 과정에서 감정은 조금씩 정돈되었고, 저는 나 자신을 점점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명상은 처음 해보는 것이어서 어색했지만, 스마트폰 앱을 활용해 하루 5분씩 짧게 시작했습니다. 조용한 공간에서 눈을 감고 호흡에만 집중하는 이 짧은 시간은 생각보다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온갖 잡생각으로 복잡하던 머릿속이 차분해졌고, 몸과 마음이 하나의 호흡으로 이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산책은 거창한 준비 없이도 가능한 회복의 시간이었습니다. 집 근처 익숙한 골목길을 걷고, 나무의 잎사귀와 하늘의 색을 바라보며 햇살을 느끼는 그 순간들 속에서, 나는 ‘지금 여기’에 있는 나 자신을 더 선명하게 느꼈습니다. 이런 작은 루틴들은 어느 순간부터 저를 다시 삶의 중심으로 이끌었습니다. 거창한 변화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일상의 반복입니다. 감정 회복은 먼 미래의 목표가 아니라, 매일 나를 마주하는 그 순간순간의 실천이라는 것을 저는 지금도 매일 배우고 있습니다.

불완전한 나를 받아들이는 연습

물론 지금도 저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감정이 다시 무너질까 두렵고, 문득문득 탈진의 기운이 느껴질 때면 마음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두려움조차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회복이란 두려움을 없애는 게 아니라, 그 감정을 인정한 채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과정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감정노동자이며, 여전히 회복 중인 사람입니다. 탈진이 다시 온다면, 그것은 내가 여전히 무너질 만큼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글이 지금 같은 자리에 서 있는 누군가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라는 조용한 위로가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요즘 저는 스스로에게 자주 묻습니다. “지금의 나, 진짜 괜찮은가요?” 이 질문은 때로 아프고, 어떤 날엔 대답조차 하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질문이야말로 솔직함의 출발점입니다. 우리는 모두 완벽하지 않습니다.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됩니다. 탈진을 겪는다고 해서 실패한 것이 아니며, 다시 회복을 향해 돌아올 수 있는 힘은 우리 안에 여전히 존재합니다. 중요한 건 그 힘을 믿고, 매일 일상 속에서 스스로를 살펴보는 반복된 실천입니다. 감정노동자에게 회복은 어느 날 끝나는 일이 아니라, 매일 자신과 대화하고 스스로를 돌보는 ‘삶의 방식’이 되어야 합니다. 그 삶의 길 위에서 우리는 조금씩 단단해집니다.

회복을 지속하는 삶 – 나답게 살아간다는 것

이제 저는 회복을 ‘삶의 목적’이 아니라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회복이란, 탈진에서 완전히 벗어난 후의 어떤 ‘이루어낸 상태’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병이 완치되듯, 어느 순간 완전히 회복되기를 바랐던 것이죠. 하지만 지금은 다르게 생각합니다. 회복은 어느 날 끝나는 목표가 아니라, 매일매일의 작은 선택들이 모여 이뤄지는 삶의 흐름입니다.

오늘 내 감정을 살필 것인지, 무리한 요청을 거절할 것인지, 스스로에게 다정한 말을 건넬 것인지, 이 모든 것이 회복을 지속하는 결정이 됩니다. 감정노동자는 특성상 언제든 다시 탈진할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합니다. 반복되는 공감, 감정의 억제, 관계 속 긴장감은 생각보다 빠르게 에너지를 소진시키곤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노동을 오래 지속하기 위해서는, ‘자기 돌봄’이 선택이 아닌 생존의 조건이 됩니다.

저는 이제 탈진을 두려워하기보다는, 다시 회복할 수 있다는 내 안의 능력을 믿으며 살아갑니다. ‘나답게 산다’는 것은 결국 내 감정과 감각을 억누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회복은 특별한 상황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나를 돌보는 실천입니다. 그렇게 하루하루의 다정한 선택이 쌓이면, 우리는 더 단단해지고, 회복력 있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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