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 이후에도 반복되는 탈진 – 감정노동의 순환 고리

작성일: 2025년 6월 24일

감정노동에서 회복했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다시 탈진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역시 한때는 “이제 괜찮아졌어”라고 생각했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다시 무너졌고, 그때 깊은 혼란과 자책을 겪었습니다. 이 글은 그 경험을 지나며 제가 회복의 본질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된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회복은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여정이며, 때때로 반복되는 탈진 또한 그 과정의 일부라는 사실을 저는 뒤늦게야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같은 길을 걷는 분들께 작은 위로와 통찰이 되기를 바랍니다.

회복은 순간이 아닌 과정입니다

감정노동의 회복이란 단순히 잠시 쉬었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처음 회복을 시작했을 때, 저 역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이 정도면 이제 괜찮겠지”, “이만큼 쉬었으면 다시 잘할 수 있겠지”라는 기대를 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너무도 사소한 말 한마디에 마음이 다시 무너졌고, 머릿속이 하얘지는 순간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말투 하나, 표정 하나에도 예민하게 반응했고, 작은 마찰에도 심장이 조이듯 긴장하며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습니다.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회복은 한 번의 결심이나 일시적인 휴식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요. 진짜 회복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매일 내 감정을 살피고, 솔직하게 마주하는 작은 선택들의 연속이었습니다. 괜찮지 않은 날에는 괜찮지 않다고 인정하고, 힘든 날에는 나를 다그치기보다 쉬어가는 용기를 내야 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내 감정의 흐름을 이해하고, 나의 속도를 존중하는 연습을 하며, 저는 매일 회복 중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완전한 회복이라는 도착점은 없을지 모르지만, 오늘도 저는 어제보다 단단한 나를 기대하며 이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지금의 나는, 매일 나를 선택한 결과입니다.

반복되는 탈진, 무언의 신호를 보다

회복 이후에도 피로가 되살아날 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을 먼저 탓합니다. “나는 이제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왜 또 이렇게 지치지?”,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저도 한동안 그런 질문들 속에서 스스로를 몰아붙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회복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내 몸과 마음이 다시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 신호였다는 사실을요. 다시 탈진이 찾아온 것이 아니라, 그간 무시되었던 피로가 조용히 얼굴을 내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를 지치게 만들었던 말투, 반복되는 무시, 감정을 건드리는 시선, 경계가 무너진 대화. 그런 일상 속 장면들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었고, 나는 그 안에서 조금씩 소진되고 있었습니다. 회복은 그런 순간들을 ‘참는 것’이 아니라, ‘눈치채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나는 왜 이 말에 상처받았을까? 무엇이 내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을까? 그렇게 내 감정의 반응을 들여다보며, 그 안에서 나 자신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더 이상 ‘견디는 사람’이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피로의 신호를 놓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잠시 멈추는 용기를 선택하려 합니다. 그러면 감정은 억눌리지 않고, 몸은 그제야 긴장을 풀어냅니다. 회복은 한 번으로 끝나는 완성형이 아닙니다. 다시 흔들리고, 다시 다듬으며, 나의 경계를 지켜내는 ‘살아 있는 과정’입니다. 이제는 같은 상처에 무너지지 않도록, 내 안의 소리에 더욱 정성껏 귀 기울이려 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 나를 더욱 단단하게 지켜주는 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회복의 척도는 ‘피로의 인식’입니다

완전히 회복했다고 믿었던 나날들, 다시금 피로가 몰려올 때마다 나는 어김없이 스스로를 자책하곤 했습니다. “왜 또 이러지?” “이 정도도 견디지 못하는 걸까?” 그렇게 나는 다시 자신을 몰아세우며 예전의 패턴으로 되돌아가려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런 반복되는 피로가 오히려 내가 예전과는 달라졌다는 신호일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과거의 나는 탈진 상태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일에 몰입했고, 누군가의 감정에 매몰된 채 스스로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몸이 무너지고 마음이 텅 비는 순간이 오고 나서야 비로소 멈출 수 있었던 시절이 분명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지친다는 감각을 인지합니다. “조금 피곤해” “지금은 멈춰야 해”라는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그 소리에 귀 기울이는 연습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스스로를 향한 연민이 생겼고, 그 감각은 회복의 또 다른 이름이 되었습니다. 회복이란 단순히 고통이 사라진 상태가 아니라, 고통이 다가올 때 빠르게 알아차리고, 나를 무너지지 않도록 돌보는 힘이 생긴 상태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피로가 느껴지는 날이면, “아, 내가 나를 더 잘 돌보고 있구나”라고 되뇌입니다. 예전에는 일의 강도나 타인의 시선에 맞추어 감정을 억눌렀지만, 지금은 나의 컨디션과 감정을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바꾸고, 휴식이라는 선택을 망설이지 않습니다. 완벽히 회복된 상태가 아니라 해도, 나는 회복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믿고 싶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피로조차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내 마음이 보내는 중요한 신호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그 신호에 응답하는 이 일상이, 나를 더 지치지 않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다시 무너지지 않으려면, 다시 돌아봐야 합니다

회복을 경험한 사람에게 가장 두려운 순간은 언제나 다시 그 지점으로 되돌아가는 일입니다. 예기치 않은 말 한마디, 반복되는 업무의 압박, 혹은 어느 날 갑자기 덮쳐오는 공허감이 나를 또다시 예전처럼 무너뜨릴까 봐, 그 불안은 회복 이후에도 끊임없이 마음을 짓누릅니다. “또 탈진할까 봐” “예전처럼 아무 말도 못 하고 버티기만 할까 봐” 하는 생각들이 일상 속에 조용히 스며들어 조심스럽게 하루를 살아가게 만듭니다.

저 역시 그런 두려움 속에서 살아갑니다. 회복했다고 해서 완벽해진 게 아니기 때문에, 작은 흔들림 하나에도 마음이 불안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압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내가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전의 나는 피로를 애써 외면하고, 감정을 눌러가며 살아남는 것만이 최선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내 감정을 들여다볼 줄 알게 되었고, 작은 변화에도 멈춰 설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거리 두기’라는 선택이 나를 지키는 가장 큰 힘이 되었습니다. 무리한 요구나 불편한 관계 앞에서, “지금은 어렵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내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분명히 이전보다 단단해졌다고 느낍니다. 회복이란, 절대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무너질 조짐을 알아차리고, 그때마다 나를 돌보는 선택을 반복해나가는 과정이라는 걸 깊이 실감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봅니다. 불안할 땐 불안하다고 말하고, 피로할 땐 휴식을 선택하며, 더는 나 자신을 무리하게 밀어붙이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내가 나를 지키는 이 연습이 쌓여, 다시는 같은 자리에 무너지지 않도록 만들고 있다는 것을 믿으며, 오늘도 조심스럽게 그러나 꾸준하게 내 삶의 경계를 세워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결국은 회복이고, 그 회복은 나의 일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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