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5년 6월 15일
오늘도 밝게 웃으며 하루를 보냈지만, 마음 한켠은 여전히 무너져 있었습니다. 감정노동이라는 이름 아래 감정을 억누르며 일하는 삶 속에서, 나는 점점 지쳐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스스로를 돌보지 않으면 완전히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 글은 탈진의 악순환 속에서도 나를 지키고 회복하기 위한 첫걸음을 떼는 여정을 담았습니다. 감정노동자에게 꼭 필요한 ‘정서의 회복 연습’에 관한 진심 어린 이야기입니다.
감정노동은 일상이 되어 있었습니다
사회복지 현장에서의 하루는 언제나 긴장과 인내로 가득했습니다. 클라이언트의 사연을 듣고, 고통에 공감하고, 때로는 욕설이나 무례한 말을 듣더라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웃어야 했습니다. “선생님은 도와주는 사람이잖아요?”라는 말에 정곡을 찔린 듯 울컥해도, 꾹 눌러 삼킨 채 미소 지으며 대답해야 했던 순간이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여갔고, 점점 제 안의 감정은 메말라갔습니다. 처음엔 ‘누구나 겪는 일이지’라고 스스로를 설득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제 표정이 굳어가는 걸 느꼈습니다. 감정의 결을 느끼기보단, 하루를 ‘버틴다’는 감각으로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문득 소름이 돋기도 했습니다.
“나는 왜 점점 무감각해지는 걸까?” 이 질문이 머릿속을 맴도는 날이 잦아졌습니다. 울어야 할 상황에서도 눈물이 나지 않았고, 기쁜 일이 생겨도 심장이 뛰지 않았습니다. 감정을 숨기다 보니, 감정 자체를 잊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문제는 그 무감각이 편해진다는 점이었습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덜 흔들리기 위해 ‘감정 없음’을 선택하게 되는 순간이 오더군요. 그런데 그건 방어가 아니라 단절이었습니다. 나와 나 자신의 감정 사이를 끊어내는 위험한 습관이었습니다.
감정노동은 단순히 힘든 일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감각과 정체성을 갉아먹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상태가 지속되다 보면, 결국 나는 나를 잃게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하루에 단 몇 분이라도, 스스로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감정노동의 메마른 일상 속에서도, 다시 나를 회복하기 위한 작지만 소중한 시도입니다.
감정의 경고, 몸이 먼저 알았습니다
어느 날, 평소처럼 출근 준비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세수하고 옷을 입고, 마지막으로 가방을 챙기려는 순간이었어요. 갑자기 머리가 핑 돌더니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습니다. 가슴이 조여오고, 손끝까지 저릿한 감각이 퍼졌습니다. ‘이상하다, 피곤한가?’ 싶어 억지로 몸을 움직였지만, 그날은 도저히 한 발짝도 나설 수 없었습니다. 결국 병원에 갔고, 의사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이건 단순한 과로가 아닙니다. 정서적 탈진 상태입니다. 지금은 잠시 멈추셔야 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제 몸이 먼저 울고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감정을 억누르고, 해야 할 일을 우선시하며, 버텨온 모든 시간들이 몸에 새겨져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막상 쉬라는 말을 들으니, 이상하게도 마음 한편이 더 불안해졌습니다. 내가 일을 쉬면 동료들은 괜찮을까? 내가 맡은 케이스는 누가 대신할까? 조직 안에서 나의 빈자리는 어떻게 처리될까?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었지요.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내가 쓰러지면, 그 모든 것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제야 저는 진짜 두려워해야 할 것이 ‘휴식’이 아니라, 감정을 느끼지도 못한 채 기계처럼 살아가는 내 모습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한 채, 감정을 외면한 채 계속 앞으로만 나아간다면, 언젠가는 되돌릴 수 없는 지점에 다다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멈췄습니다. 아주 잠깐이지만, 나를 다시 들여다보기 위해 시간을 내기로 했습니다. 병가를 내는 것도, 정서적 회복을 위한 상담을 받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내 감정과 몸이 보내는 신호를 존중하는 첫걸음이었습니다. ‘멈춤’은 결코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다시 나를 회복하기 위한 용기였고, 무너짐이 아닌 회복의 시작이었습니다.
회복은 거창한 게 아니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회복을 시작했던 날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무언가 대단한 걸 해야 할 것 같았지만, 사실 제가 그날 한 일은 아주 단순했습니다. 바로 ‘감정 일기’를 써본 것이었죠. 공책을 꺼내고 펜을 드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이걸 써서 뭐가 바뀌겠어?” 하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그런데도 한 줄이라도 써보자는 생각으로 조용히 마음을 들여다봤습니다.
그날 저는 제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오늘 어떤 감정을 느꼈지?” 그리고 솔직하게 답해봤습니다. “낮에 들은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어. 괜찮은 척했지만 속으론 너무 서운했어.” 처음엔 서툴렀고, 감정을 정확히 표현하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기분 나빴다’, ‘짜증 났다’ 같은 막연한 표현만 떠올랐죠. 하지만 다음 날, 다시 펜을 들고 나니 조금 더 구체적인 말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말은 내가 무시당했다는 느낌이었어. 내 노력이 보이지 않았다는 게 속상했어.”
그렇게 매일 단 5분. 감정이 흐르는 대로 적기 시작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 짧은 시간들이 쌓이자, 점점 내 마음속에 억눌렸던 감정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참 많이 참아왔구나. 나는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 강한 사람인 척하면서 내 감정을 외면해왔구나. 그런 사실을 마주하게 된 것이었죠.
이 작은 습관이 저를 바꿨습니다. 어떤 하루는 울컥해서 펜을 던지기도 했고, 어떤 날은 별 감정이 없어 보였던 날에도 글을 쓰면서 조용히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아도, 글로 감정을 꺼내놓는 것만으로도 제 마음은 조금씩 정돈되어 갔습니다. 그렇게 저는 다시 ‘느낄 수 있는 사람’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회복은 아주 사소한 행동에서 시작됐습니다. 감정을 감추는 삶에서, 감정을 마주하는 삶으로. 그 변화의 시작은 고작 몇 줄의 기록이었지만, 제 삶을 다시 느낄 수 있게 해준 가장 중요한 첫 단추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도 그 단추를 하나씩 다시 채워가고 있습니다.
감정을 이해하면, 관계가 다시 보입니다
저는 늘 누군가에게 맞춰 살아왔습니다. 특히 일터에서는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프로답다’고 배웠기에, 무례한 말을 들어도 웃어넘기고, 속상한 상황에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애썼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간관계는 점점 더 피곤해졌고, 내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것이 버릇처럼 굳어져 갔습니다. 그러면서도 혼자 속으로 끓는 일이 많았지요.
그런데 감정노동에서 회복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내 감정을 똑바로 바라보기 시작했을 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오히려 나를 더 쉽게 다치게 만든다는 사실을요. “지금 너무 속상해”, “나, 방금 말에 기분이 나빴어”라고 마음속으로라도 말해주기 시작하자, 이상하게 상처가 덜 날카롭게 느껴졌습니다. 내 감정을 내가 인정해주기 시작하면서, 억지로 ‘괜찮은 사람’인 척하지 않아도 되었던 겁니다.
그 변화는 곧 관계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예전엔 퇴근 후에도 동료와의 불편한 말 한마디가 마음을 짓눌렀지만, 지금은 그 감정을 끌어안고 말을 건넬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 요즘 좀 지쳐 있어. 네가 그렇게 말해주니까 위로가 돼.” 그렇게 한마디를 건네는 것만으로도, 상대와의 거리감이 줄어들고 마음이 닿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상대도 저의 진심을 느꼈는지, 오히려 조심스럽게 다가와주고, “나도 그랬어. 말 안 해서 그렇지.” 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습니다.
감정을 나누는 게 어색했던 과거의 저에게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죠. 하지만 이제는 알겠습니다. 감정을 표현한다는 건 약함의 표시가 아니라,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한 용기라는 것을요. 감정은 결국 사람 사이를 잇는 다리였습니다. 그 다리를 먼저 내밀었을 때, 관계에 온기가 돌고, 내가 덜 외로워졌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연결된 작은 대화들이, 다시 나를 회복시키는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회복은 완성이 아닌 반복입니다
한때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충분히 쉬고 마음을 다잡으면, 다시는 예전처럼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요. 감정노동으로부터의 회복도 한 번쯤 크게 울고, 진심 어린 위로 한마디를 받으면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건 오산이었습니다. 어느 날은 기분 좋게 일하다가도,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가슴 깊은 곳이 뻐근해지거나, 눈물이 핑 돌곤 했습니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은 여전히 힘들어하고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예전과는 달라진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런 감정을 예전엔 억누르고 무시했지만, 지금은 ‘눈치챌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겁니다. “아, 지금 내가 흔들리고 있구나.” 그걸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이미 회복은 시작된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 감정을 조용히 꺼내 보고, 스스로에게 말을 겁니다. “괜찮아, 다시 흔들릴 수도 있어. 중요한 건 지금 네가 그걸 알고 있다는 거야.”
저는 이제 회복을 단단한 벽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쉽게 무너지더라도 다시 쌓아올릴 수 있는 유연한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일이 새로운 감정의 파도 같지만, 저는 그 파도를 타는 법을 조금씩 익히고 있습니다. 완벽해질 수는 없어도, 어제보다 오늘 더 나를 잘 돌보려는 마음은 점점 단단해지고 있습니다.
회복은 일직선으로 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곡선을 그리고, 때로는 제자리걸음을 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 반복 속에서 나는 나를 이해하게 됩니다. 흔들리는 나도 괜찮다는 걸, 그런 나를 다정하게 안아줄 수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이전보다 더 강해졌다고 느낍니다.
이제는 매일이 회복의 과정임을 받아들입니다. 오늘 힘들었다면, 내일은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품습니다. 그리고 저는 믿습니다. 회복은 선택이고, 그 선택은 누구나 조금씩 배워갈 수 있다고. 흔들리는 날들 속에서 다시 나를 붙잡을 수 있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져야 할 진짜 회복의 힘이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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