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5년 10월 25일
당신의 이름이 사라진다면, 당신은 누구입니까?
그날 이후 김민준은 이름을 잃었다. 그를 부르는 사람은 없었고, 대신 “20번”이라는 숫자가 그의 존재가 되었다.
〈캄보디아 증언록〉 2화는 인간의 이름이 사라지고, 숫자가 권력이 되는 감금소의 세계를 보여준다.
이곳에서는 사람의 존엄이 규칙으로, 폭력이 질서로 작동했다.
그리고 민준은 그 안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무표정’이라는 새로운 가면을 쓰기 시작했다.
■ 목차
- 번호가 된 인간들
- 규칙이라는 이름의 폭력
- 살아남기 위한 거짓말
- 감시와 공포의 구조
- 이름을 되찾고 싶은 마음
1. 번호가 된 인간들
“이제부터 너는 20번이야.”
김실장의 말이 떨어지자, 누군가가 낡은 태그를 그의 팔목에 걸었다.
20이라는 숫자가 새겨진 얇은 금속판이었다.
그의 곁에서 친구 박성호는 ‘22번’이 되었다.
누군가는 17번, 또 누군가는 38번으로 불렸다.
그들의 진짜 이름은 사라졌고, 이곳에서 이름은 불필요했다.
오직 ‘성과’와 ‘지시’만이 인간을 구분했다.
아침 7시, 전등이 켜지고, 담당자가 명단을 부르며 숫자를 호명했다.
“15번, 16번, 17번… 20번, 22번.”
그때마다 사람들은 기계처럼 “예”라고 대답했다.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기 위해서였다.
민준은 그 순간 깨달았다.
‘이곳에서는 이름보다 숫자가, 인간보다 규칙이 중요하다.’

2. 규칙이라는 이름의 폭력
첫 번째 규칙은 “질문하지 말 것.”
두 번째는 “명령에 즉시 복종할 것.”
세 번째는 “웃지 말 것.”
이 세 가지를 어기면 ‘징벌방’으로 끌려갔다.
그곳은 불빛이 꺼진 작은 방이었다.
하루 동안 물 한 모금, 밥 한 숟가락도 허락되지 않았다.
민준은 두 번이나 그곳에 끌려갔다.
처음은 “왜 우리를 가둬요?”라고 물었을 때였고,
두 번째는 친구 성호가 쓰러졌을 때 그를 부축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유를 묻는 대신,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이곳에서 ‘이유’는 죄였고, ‘순종’만이 생존이었다.

3. 살아남기 위한 거짓말
3일째, 민준은 거짓말을 배우기 시작했다.
“한국 고객센터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 말은 조직이 시킨 대사였다.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평범했다.
“계좌번호가 바뀌었다고요?”
민준은 양심의 저항을 삼켰다.
그가 거짓말을 할 때마다 화면에는 “실적 +1”이라는 글자가 떴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밤이 되면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사기꾼일까, 아니면 피해자일까?”
그 질문에 답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벽 너머에서는 또 다른 이의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울음은 오래된 기도처럼 들렸다.

4. 감시와 공포의 구조
건물 천장마다 카메라가 달려 있었다.
방 안의 모든 행동은 감시당했고, 화장실 문도 잠기지 않았다.
민준은 잠을 자다 꿈속에서도 ‘호명 소리’를 들었다.
“20번, 일어나.”
그 목소리는 마치 악몽처럼 따라왔다.
감시자는 ‘관리자’라 불렸지만, 실상은 ‘감시병’이었다.
그들은 한국어를 능숙히 썼고, 때로는 친절한 말투로 유혹했다.
“실적 올리면 내보내줄게.”
하지만 아무도 나가지 못했다.
나갔다던 사람들은, 다음날 명단에서 사라졌다.
민준은 그들의 부재를 ‘퇴근’이라 믿고 싶었지만,
창문 밖으로 들려오는 개 짖음 소리가 그를 현실로 끌어왔다.

5. 이름을 되찾고 싶은 마음
한 달이 지나자, ‘20번’이라는 숫자가 그의 이름이 되었다.
누군가 “민준아”라고 부르면 오히려 낯설었다.
그의 언어, 습관, 표정, 모두가 이곳의 규칙에 길들여졌다.
그러나 가끔 꿈속에서 그는 자신을 ‘김민준’이라 불렀다.
그때마다 눈물이 흘렀다.
이름을 부르는 꿈은,
이곳에서 유일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순간’이었다.
어느 날, 철문이 열리고 새 인원이 들어왔다.
그의 이름은 ‘정우진’.
그는 민준에게 속삭였다.
“여기서 나간 사람, 한 명도 없어.
하지만, 나가야 해. 우리 이름을 되찾으려면.”
그 말은 민준의 마음속에 불씨처럼 남았다.
그때부터 민준은 벽을 보기보다 하늘을 보기 시작했다.
그 하늘은 회색이었지만, 그에게는 유일한 출구였다.
🎥 유튜브 수향들TV 연동 예정


![[캄보디아 증언록] 2화 사라진 이름들 – 숫자가 된 인간을 표현한 대표 이미지](https://maiisa100.com/wp-content/uploads/2025/10/증언록-2화-1-1024x576.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