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5년 6월 15일
‘오늘은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 저도 수없이 했습니다. 감정노동의 끝자락에서 마주한 탈진의 순간들, 그 지친 마음을 다시 일으키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이 글은 그 회복의 여정을 고백처럼 풀어낸 이야기입니다. 감정을 지키며 일하고 싶은 모든 분께 전합니다.
1. 나는 왜 그만두고 싶었을까
활동지원사로 일하던 어느 날 아침이었습니다. 아직 9시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두 통의 전화를 받고 난 뒤 저는 이미 마음이 녹초가 돼 있었습니다. 첫 번째 전화는 이용자의 가족이었고, 짜증 섞인 말투로 저에게 항의하듯 말을 쏟아냈습니다. “왜 어제 그렇게 했어요?”, “설명을 제대로 안 하신 거 아닌가요?”라는 말들이 이어졌고, 저는 한참을 듣기만 했습니다. 사과는 했지만, 속은 답답했습니다. 그 전화를 끊자마자 이어진 두 번째 전화는 긴급 호출이었습니다. 급하게 출근이 가능한지, 다른 지원사님이 못 나오셨다는 겁니다. 달력을 확인할 틈도 없이 상황을 조율해야 했고, 저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습니다.
전화를 끊고 가만히 앉아 있던 순간, 문득 마음속에서 무너져내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복도 끝, 저는 조용히 중얼거렸습니다. “오늘은 그냥 그만두고 싶다…” 그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습니다. 출근길엔 ‘오늘도 잘 해보자’ 다짐했건만, 오전도 지나기 전에 제 마음은 이미 탈진해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일했습니다. 동료에게 “괜찮아요”라고 말했고, 이용자 앞에서는 언제나처럼 친절하게 응대했지만, 속마음은 점점 말라가고 있었습니다. 감정노동이 무서운 이유는 이처럼 ‘버텨야 하는 척’, ‘괜찮은 척’, ‘웃는 척’을 반복하다 보면, 내가 정말 무엇을 느끼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된다는 점입니다. 감정을 억누르는 습관이 몸에 배면서, 나 자신을 돌보는 감각도 함께 사라지는 것이지요.
그날 이후 저는 매일 같은 질문을 품고 다녔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힘들까?”, “이 일을 정말 계속할 수 있을까?” 감정노동의 고단함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척’ 속에서 자랍니다. 겉으로 보이는 친절함 뒤엔, 보이지 않는 눈물과 피로가 켜켜이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2. 감정노동은 마음을 잠식합니다
감정노동은 단순히 일하는 방식이 아니라, ‘좋은 사람’처럼 보여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자신을 억누르는 행위의 연속이었습니다. 고객이 짜증을 내도 화를 내면 안 되고, 속이 상해도 웃어야 했습니다. 상처받은 마음은 업무의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묻혀야 했고, 불쾌한 감정은 ‘감정 관리’라는 명목으로 눌러야 했습니다. 그렇게 억누른 감정들이 쌓이고 또 쌓여 어느 순간, 제 마음은 조금씩 무뎌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과정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결국 질문을 던졌습니다. “왜 우리는 견디다가 결국 그만두게 되는 걸까?” 이 질문에서 제 박사논문이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직의 이유로 ‘적성과 맞지 않아서’ 혹은 ‘더 나은 조건을 찾아서’라고 말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수많은 감정노동자들의 이야기는 달랐습니다. 진짜 이유는 피로가 아니라, 감정의 고갈이었습니다. 더 이상 웃을 수 없고,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감정의 끝에서 그들은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 고갈은 단지 직무의 과중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라는 존재가 누군가에게 ‘사람’이 아니라 ‘도구’처럼 느껴질 때, 마치 내 존재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기능적으로 쓰이다 버려지는 느낌을 받을 때, 마음의 균열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 감정은 서서히 일상을 잠식했고, 내가 누구인지조차 흐릿해졌습니다. 감정을 숨기다 보면 결국 스스로의 감정조차 외면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내가 나를 잃는 순간이 오게 됩니다.
감정노동은 단순한 업무 기술이 아니라 마음을 사용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상처도, 피로도, 회복도 모두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저는 이 문제를 더 이상 개인의 약함이나 적응 부족으로 치부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감정노동은 개인의 감정이 반복적으로 침묵당하는 구조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그 구조가 변화되지 않는 한, 마음의 탈진은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고리를 끊기 위해 우리는 감정의 회복을 말해야 합니다.
3. 떠나고 싶었던 마음을 마주했던 시간
일하면서 가끔 ‘나는 사람이 아니라 기능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짜증, 불만, 때로는 모욕적인 말까지 모두 받아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감정을 마음껏 드러낼 수는 없었습니다. 잠시 후에 또다시 마주할 다음 사람에게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친절한 표정과 다정한 말투로 응대해야 했습니다. 감정 하나하나가 제 안에 살아 있긴 한 건가, 그런 의문이 들 정도로 감정을 억누르는 일이 일상이 되었지요.
표정, 말투, 분위기, 말의 속도까지… 모든 것이 ‘고객 중심’이라는 기준 아래 조정되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정작 저의 감정은 우선순위에서 점점 밀려나 있었습니다. 감정을 다루는 일이 업무의 일부라면, 감정을 억제하는 건 살아남기 위한 전략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전략은 어느새 습관이 되었고, 습관은 결국 제 마음을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어느 날, 퇴근길에 동료와 함께 걷다가 문득 말했습니다. “요즘은 아무 감정이 없어. 누가 울어도 그냥 지나쳐.” 스스로 한 말이었지만 그 순간 가슴이 턱 막혔습니다. 누군가의 고통에도 무감각해진 나,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던 내가 더 이상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제야 낯설고도 무섭게 다가왔습니다.
그 말을 꺼내고 나서야 저는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지금 내가 회복해야 할 건 단지 몸의 피로나 업무 스트레스가 아니라는 것. 오히려 잃어버린 감정, 느끼는 능력, 그리고 그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내 마음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애써 외면하면서, 타인의 감정만을 챙기던 그 시간들이 저를 마르게 했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감정노동은 사람의 마음을 무디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뎌진 마음은 어느 순간, 일상에서도 감정이 멈춘 듯한 공허함을 만들어냅니다. 그 공허함이 쌓이면 결국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찾아오게 됩니다. 저 역시 그 감정의 끝에 있었고, 그제야 진심으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회복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그런 나의 마음을 정직하게 마주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습니다.
4. 회복은 작은 실천에서 시작됐습니다
‘회복’이라는 말은 처음엔 저에게 너무 큰 단어처럼 느껴졌습니다. 마치 지금의 삶을 통째로 내려놓거나,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목표처럼 느껴졌지요. 하지만 막상 제가 회복을 시작한 방식은 너무도 작고 사소한 것들이었습니다. 그중 첫 번째는 감정일기를 쓰는 일이었습니다. 하루에 세 줄, 정말 짧게라도 내가 느꼈던 감정을 적어보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무시당한 느낌이 들어 속상했다’, ‘일하면서도 내 마음이 허전했다’, 이런 문장들이었지요. 처음엔 그저 힘든 날의 기록일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제 감정의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억눌렀던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두 번째는 동료와 짧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업무 중 마주치는 짧은 틈에 “나 오늘 좀 힘들었어”라고 말하는 것, 그리고 “나도 그래”라는 공감을 듣는 일이 생각보다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정서적으로 나와 닮은 누군가와의 공감은,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을 주었고, 그날을 조금 덜 무겁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세 번째는 자기 안에서 경계선을 긋는 연습이었습니다. “이건 내 책임이 아니야”라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되뇌었습니다. 모든 것을 나 때문이라 여기며 자책하던 습관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였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저를 지켜내기 위한 최소한의 방패 같은 말이었습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그치던 목소리를 조금씩 낮추고, 내 편이 되어주는 연습을 반복했습니다.
회복은 거창한 변화나 완벽한 상황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는 이직을 통해 삶을 바꿀 수 있겠지만, 저는 그럴 수 없었기에 오히려 일상 안에서 실천 가능한 방식들을 찾았고, 그것들이 제 회복의 씨앗이 되어주었습니다. 아주 작은 실천들이 모여 제가 다시 저를 지탱할 수 있게 만든 것이지요. 무너지는 대신, 아주 작게라도 다시 나를 세우는 그 한 걸음이, 회복의 시작이었습니다.
5. 지금 내 마음은 무사한가요?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께, 저도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당신이 지금 떠나고 싶다고 느끼는 이유는 단순히 일이 고되어서일까요,
아니면 매일 감정을 억누르며 쌓여온 마음의 무게 때문일까요?
감정노동을 하는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상대의 감정에 맞춰 말하고 행동합니다.
친절하게 웃고, 공감하는 척하고, 불편한 요구에도 “네,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몸보다 더 지친 건 마음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마음을 돌볼 시간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일이 끝나도, 감정은 그대로 남아 있기에 무방비로 탈진을 반복하게 되지요.
감정노동이 우리에게 던지는 진짜 질문은
“얼마나 오래 이 일을 할 수 있을까?”가 아닙니다.
“나는 지금 내 감정을 잘 돌보고 있는가?”,
“오늘 하루, 나를 위해 무엇을 해주었는가?”가 되어야 합니다.
저 역시 그 질문을 너무 늦게 만났습니다.
마음이 무너진 후에야 비로소 돌아보게 됐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만큼은, 조금 더 일찍 그 질문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지금 당신의 마음은 괜찮으신가요?”,
“혹시 그 마음, 너무 오랫동안 혼자 견디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회복은 아주 작은 ‘자각’에서 시작됩니다.
내가 힘들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감정이 무너졌음을 알아차리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첫 걸음이 됩니다.
당신의 마음은 당신만이 돌볼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가장 먼저 챙겨야 할 사람은 바로 ‘당신 자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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