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노동과 이직 사이 – 내가 놓쳤던 신호들

작성일: 2025년 6월 19일

감정노동자로 살아가며 문득 떠오르는 이직의 생각은 결코 단순한 충동이 아닙니다. 몸과 마음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치고 있었고, 그 신호는 피로, 무기력, 짜증, 회피의 형태로 수없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징후를 일상의 피곤함으로 치부하며 외면해왔는지도 모릅니다. 이 글은 감정노동자가 느끼는 이직 충동의 이면에 숨겨진 감정의 흐름과, 진짜 회복의 실마리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를 함께 짚어보고자 합니다. 감정노동을 단지 직업적인 피로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과 존엄을 지키기 위한 회복의 시작점으로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1. 이직이라는 단어가 처음 떠오른 날

그날도 여느 때처럼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 익숙한 미소를 지으며 민원인을 맞이했습니다. 전형적인 하루였습니다. 반복되는 서류를 처리하고, 요청사항을 듣고, 민감한 말투는 조심스럽게 넘기며 하루를 무사히 마무리했지요. 누구도 불쾌해하지 않았고, 어떤 갈등도 없이 지나간 평범한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퇴근길, 아무런 예고도 없이 마음속에 문장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그만두고 싶다.” 처음엔 단순히 몸이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하루종일 말하고, 미소 짓고, 감정을 눌러 담았으니 지쳤을 거라고 넘기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 문장은 다음 날에도, 또 그다음 주에도 끊임없이 떠올랐습니다. 누가 상처 주는 말을 한 것도 아니고, 명백한 부당함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제 안의 감정은 이미 오래전부터 무너지고 있었던 겁니다. 감정노동자로 살아가는 일상은 겉보기에 아무 문제 없어 보여도, 내면 깊은 곳에서는 이미 경고음이 울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날 처음 떠오른 ‘이직’이라는 단어는 실은 오래전부터 제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던 무언의 외침이었습니다.

정해진 대본처럼 웃고, 정해진 시간에 공감하고, 고객의 감정에만 반응하는 일상 속에서 제 감정은 점점 흐려지고 있었습니다. 나의 말투와 표정은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었고, 역할에 맞게 훈련된 감정만을 사용하며 하루를 버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제야 알았습니다. ‘이직하고 싶다’는 말은 단지 환경을 바꾸고 싶다는 뜻이 아니라, ‘나’를 회복하고 싶다는 내 안의 절실한 요청이었다는 것을요.

2. 내 안에서 반복되던 ‘그만’이라는 속삭임

직장 내 감정 규범은 겉으로 보기엔 단순하고 당연해 보입니다. 친절하게 말하고, 미소를 유지하며, 감정을 조절하는 것. 하지만 이런 규범은 감정노동자에게 정서적 에너지를 끊임없이 소모하게 만드는 주된 요인이기도 합니다. 특히 사회복지사나 장애인활동지원사처럼 늘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 감정에 반응해야 하는 직무 환경에서는 감정의 일관성이 마치 ‘존재의 조건’처럼 여겨집니다. 감정을 흔들림 없이 유지하는 것이 전문가로서의 자질이자 책임처럼 강요되다 보니, 그 무게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게 스며듭니다.

저 역시 현장에서 일하면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그 감정은 늘 부끄럽게 여겨졌습니다. 선생님이라는 호칭, 연구자라는 정체성, 그리고 도움을 주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 속에서 ‘그만하고 싶다’는 감정은 나약함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감정은 결코 나약함의 표현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소진의 신호였고, 내면 깊은 곳에서 나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방어였던 것입니다.

저는 이 경험을 박사논문에서 구조화하여 정리한 바 있습니다. 감정노동 수행자들이 ‘자신의 감정’과 ‘업무상 요구되는 감정’ 사이의 간극에서 느끼는 심리적 괴리는 단순한 불편함이 아닌, 직무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핵심 요인입니다. 특히 표면적으로 감정을 조절하며 일하는 ‘표면행동’이 누적될수록 “이건 내가 아니야”라는 감각이 강해지고, 그 이질감이 결국 현실적인 이직 의도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수많은 인터뷰와 실증 데이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만’이라는 속삭임은 단순한 도피가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한 정당한 자기감각의 표현이었습니다.

3. 이직에 대한 죄책감, 그것도 감정노동의 일환

감정노동자는 이직을 결심할 때조차 감정의 무게로 판단하게 됩니다. “지금 내가 그만두면 동료들이 너무 힘들어질 텐데”, “이용자들은 나를 믿고 의지하고 있는데 내가 빠지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들은 분명 책임감의 표현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조차 감정노동의 연장선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 감정보다 타인의 감정을 먼저 고려하고, 나의 회복보다는 타인의 불편을 걱정하는 마음. 그 배려심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나를 계속해서 소진의 구조 안에 붙잡아두는 힘으로 작용합니다.

조직은 이런 감정적 책임감을 ‘사명감’이나 ‘헌신’이라는 언어로 포장하면서, 감정노동자의 내면을 스스로 통제하게 만듭니다. 힘들다는 말을 꺼내지 못하게 하고, 떠나고 싶은 마음조차 ‘이기적인 선택’처럼 느끼게 만듭니다. 그 결과 감정노동자는 자신의 이직 결정을 자꾸 유예하게 되고, 정당한 퇴직조차 스스로에게 죄책감을 안기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감정노동의 구조적 문제입니다. 개인의 탈진은 지극히 사적인 문제로 치부되지만, 정작 그 원인은 오랫동안 감정과 역할을 혼동하게 만든 시스템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직은 도피가 아니라 회복의 한 형태일 수 있습니다. 저는 직접 그 경험을 했습니다. 사회복지사로 오랜 시간 현장에서 일하면서 반복되는 감정소진과 심리적 무기력감을 겪은 끝에, 연구자로 방향을 전환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선택은 결코 가볍지 않았지만, 저를 지탱해주는 감정의 균형을 다시 회복하게 해준 계기였습니다. 연구자가 된 이후에도 감정노동은 여전히 존재했지만, 감정을 객관화하고 분석할 수 있는 도구를 가지게 되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직은 나를 포기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더 오래 지속시키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직을 더 이상 실패나 중단으로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때로는 삶의 결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고, 탈진에서 회복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발판이 될 수 있습니다. 감정노동자는 지칠 수 있고, 떠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충분히 존중받아야 합니다.

4. 회복을 향한 첫 걸음 – 전환의 용기를 믿으며

감정노동의 이면에는 늘 억눌린 감정이 존재합니다. 누군가의 감정에 맞춰야 했고, 나의 감정은 뒤로 미뤄두어야 했으며, 때로는 나 자신을 설득해가며 견뎌야 했습니다. 하지만 억눌린 감정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고요히 축적되며 어느 순간 우리의 일상과 정체성까지 위협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때로 ‘떠남’을 선택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직은 단순한 포기가 아니라, 정서적으로 탈진한 자신에게 건네는 회복의 기회이자, 구조를 벗어나기 위한 전환의 시작입니다. ‘도망’이 아니라 ‘돌봄’으로서의 이직. 그것은 분명 용기가 필요한 선택입니다.

저는 박사논문에서 감정노동 수행자들 중 이직 이후 감정 회복을 경험한 사례들을 면밀히 분석했습니다. 공통적으로 나타난 것은 이직을 통해 삶의 루틴을 재정비하고, 자신의 감정을 다시 들여다보는 시간이 생겼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타인의 감정에만 반응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에 귀 기울이는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비로소 숨 쉴 공간을 확보한 것이지요. 감정노동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고통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자신을 지키는 선택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고 말했습니다. 이직은 삶의 방향을 다시 선택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 글을 통해 선생님들도 자신 안의 신호에 귀 기울이길 바랍니다. 지금 느끼는 피로와 무기력함이 단순한 일시적 반응이 아닐 수 있다는 것, 그 감정을 외면하지 않아야 회복이 시작된다는 것을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감정노동 칼럼 2집의 마지막 편인 이 글이, 선생님의 회복 여정에 작은 쉼표가 되어드릴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감정노동을 멈출 수는 없어도, 그 안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은 분명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첫 걸음은, 바로 자신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일입니다.

  1. 지금, 내 감정을 회복하는 연습을 시작할 때

감정노동을 멈출 수 없다면, 최소한 그 안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회복은 거창한 결심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작고 구체적인 실천에서부터 가능합니다. “오늘은 무리하지 않겠다”, “이건 내 책임이 아니다”, “지금 이 감정은 타당하다”는 문장을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것, 그 자체가 회복의 시작입니다.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온 우리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사실 감정을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감정노동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살피는 일은 더 이상 미뤄져서는 안 됩니다.

제가 만난 많은 감정노동자들은 자신이 얼마나 지쳐 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일상을 견뎌왔습니다. 감정노동은 우리로 하여금 ‘괜찮은 척’ 하는 데 능숙하게 만들지만, 그 속에서 나의 감정은 점점 무뎌지고 말게 됩니다. 이제는 그 무뎌진 감정을 다시 깨우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감정일기를 써보는 것, 나를 지치게 한 순간을 하루 중 하나만 짚어보는 것, 회복이 필요한 순간에 ‘쉬어도 된다’는 말을 자신에게 건네는 것. 이런 작고 사적인 선택이 쌓일 때, 우리는 다시 나를 회복하는 길로 접어들 수 있습니다.

회복은 완벽한 변화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단지, 더 이상 내 감정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작은 다짐이면 충분합니다. 감정노동 칼럼 2집을 통해 우리가 나눈 이야기들이 선생님의 회복 여정에 작은 나침반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부터, 선생님이 스스로에게 가장 먼저 건네야 할 말은 이것입니다. “이제 괜찮다고 말해도 되는 나”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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