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5년 7월 13일
‘괜찮아요’라는 말이 입에 붙어버린 지 오래였습니다. 힘들어도 웃고, 서러워도 참는 게 익숙했지요. 그렇게 나는 늘 괜찮은 척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회복을 배우면서 알게 됐습니다. 그 말들이 내 감정을 잠재우고, 나를 더 지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요. 이제는 그 습관을 끊고, 내 마음의 진짜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합니다.
감정을 숨기는 건, 나를 버리는 일이었다
한동안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괜찮은 척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화가 나도 웃고, 속이 상해도 티를 내지 않고, 울고 싶을 때도 꾹 참았지요. 감정노동자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주변 동료들도 다들 그렇게 하고 있었고, 그것이 ‘프로페셔널’의 기준인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렇게 나는 내 감정을 밀어내고, 차곡차곡 마음속에 쌓아두며 지내왔습니다. 처음에는 괜찮은 줄 알았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내 안에서 뭔가 말라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짜증이 밀려오고, 눈물이 쉽게 터졌으며, 사람들과 마주하는 것 자체가 점점 버거워졌습니다. 몸은 지치고, 마음은 둔감해졌습니다.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나는 회복 중이 아니라, 그저 감정을 숨기며 버티고 있었던 거라는 걸요.
‘괜찮아요’라는 말이 쌓여 만든 탈진
나는 ‘괜찮아요’라는 말을 습관처럼 달고 살았습니다. 그 말은 나에게 방패처럼 작용했고, 때로는 상대를 안심시키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나 자신에게는 그 어떤 위로도 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억지로 수락할 때, 마음이 불편했지만 그냥 웃으며 넘겼을 때, 나도 모르게 ‘괜찮아요’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 짧은 한 마디가 쌓이고 쌓여, 결국에는 내 감정을 무시하게 만들고, 탈진을 부른 것입니다. 회복은 휴식이나 치료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 감정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감정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괜찮아요’라는 말 대신, ‘사실은 조금 힘들어요’라고 말하는 순간이야말로 회복의 시작이었습니다. 억누른 감정은 결코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마주해야 비로소 벗어날 수 있습니다.
억눌린 감정은 언젠가 틈을 타 무너뜨린다
감정을 억누른 채로 지낸다는 건 마치 밀봉된 병에 끓는 물을 붓는 것과 같았습니다. 겉으론 멀쩡한 척하지만, 안에서는 계속 압력이 쌓이고 있었던 거죠. 그리고 그 압력은 결국 어느 날, 아주 작은 일에 폭발하게 됩니다. 나에게도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별거 아닌 말 한마디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스스로도 왜 그런지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눈물은 억눌러온 감정이 흘러나온 결과였어요. 나는 그동안 참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내 마음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일이었습니다. 회복이란 그 억눌린 감정들과 마주앉아 대화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 감정들이 왜 생겼는지,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를 조용히 들어보는 순간, 나는 비로소 조금씩 나를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감정은 통제해야 할 적이 아니라,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감정을 표현하는 연습, 아주 작은 문장부터
‘감정을 표현하라’는 말은 너무 막연하고 멀게 느껴졌습니다. 처음엔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주 작은 문장부터 시작했습니다. “조금 피곤하네요.” “그 말이 살짝 마음에 걸려요.” “오늘은 혼자 있고 싶어요.” 처음에는 입 밖으로 꺼내는 것조차 두려웠고, 상대가 어떻게 반응할지 겁도 났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내가 진심을 담아 표현한 감정은 상대에게도 진심으로 전달되었습니다. 말로 표현하는 연습은 나 자신을 존중하는 첫걸음이 되었습니다. 매일 감정일기를 쓰며, 오늘 느낀 감정을 단 한 줄이라도 기록해보았습니다. ‘슬펐다’, ‘서운했다’, ‘고마웠다’는 말들이 조금씩 내 안의 감정을 다시 일깨우기 시작했지요. 그렇게 나는 점점 나의 언어를 회복했고,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감정들이, 사실은 말해줘야 사라진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감정노동자에게 필요한 언어 – 나를 살리는 말
감정노동자는 항상 타인의 감정을 먼저 배려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감정은 점점 희미해지고, 결국엔 감정 표현을 잊은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나도 그랬습니다. 늘 타인을 위하는 말을 먼저 꺼내고, 내 감정은 뒷전으로 밀어두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나는 나를 위한 언어를 선택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도와줄 수 없어요.”, “그 말에 조금 상처받았어요.”, “오늘은 제 마음을 먼저 돌보고 싶어요.” 이런 말들이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어느 순간 나에게는 생존을 위한 필수 문장이 되었습니다. 감정은 억누르는 게 아니라 말로 풀어낼 때 힘을 잃습니다. 그리고 그 말하기는 나를 살리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감정 표현은 나약함의 표시가 아니라, 자신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의 언어라는 걸 나는 배웠습니다.
마무리 – 감정을 인정하는 연습이 곧 회복입니다
회복은 감정을 숨기지 않는 데서 시작됩니다. 완벽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나는 이제 내 감정을 외면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지금 슬프다”, “나는 지금 화가 난다”, “나는 지금 지쳤다”는 말을 스스로에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훨씬 가벼워집니다. 나는 지금도 매일 연습 중입니다. 어떤 날은 잘하고, 어떤 날은 다시 억누르기도 하지만, 중요한 건 내가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감정노동자는 타인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지만, 이제는 나 자신을 위해서도 감정을 돌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연습은 아주 작고 느릴 수 있지만, 분명히 우리를 회복으로 이끕니다. 오늘도 나는 묻습니다. “지금 내 마음은 어떤가요?” 그 질문에 솔직해지는 순간, 나는 다시 살아갈 힘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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